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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3

삼국시대 때 백제의 왕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최고위층이 된 게 사실인가요?

삼국시대 광개토대왕 때문에 쫓긴 백제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세력을 토벌하고 일본의 최고위층이 된 것이 혹시 사실인가요? 워낙 소설에서 이런 소재를 많이 사용을 하기에 실제 역사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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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98년 5월, 영국 왕실 연회에 참석한 아키히토 일왕이 여왕과 환담했던 내용으로, 이때 일왕은 일본의 과오에 반성하며, 식민지였던 한국에 제대로 사죄함으로써 동북아 평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일왕은 또 일본 왕가가 백제의 후손이라 밝혔으며, 왕가의 후손들이 이를 제대로 직시했으면 한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아키히토 상왕은 천황이었을 때인 2001년 12월, 68세 생일 기자 회견에서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음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혈통이 백제와 관련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2004년 8월에는 아키히토 천황의 당숙 아사카노미아(朝香宮)씨가 수행원 및 친척과 함께 충남 공주시의 무령왕릉을 참배하고 무령왕릉을 관찰한 내용을 돌아가서 일왕에게 자세히 보고하겠다면서 가져온 향로와 향을 박물관에 기증하고 돌아갔다. 천황을 대신한 방문이었다.

    무령왕과 간무(桓武) 천황의 관계는 무령왕→ 아들 순타태자(淳陀太子)→ 후손 화을계(和乙繼)→ 딸 화신립(和新立)→ 간무(桓武) 천황(제50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으로 일본 왕가가 백제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상 중에 할머니 한 분이 백제 왕족이었다고 왕가가 백제의 후손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손은 부계로 이어진다.

    무령왕이 누구인가? 『일본서기』 「웅략기」에는 백제의 가수리군(개로왕)이 아우인 군군(곤지)에게 일본으로 돌아가서 왕의 업무를 하라고 명했을 때, 군군은 왕의 부인을 함께 보내달라고 했고, 가수리군은 임신한 부인을 군군에게 주면서, 가는 길에 출산하면 배 한 척에 실어 속히 본국으로 보내라 했고, 가는 길에 임신한 부인이 축자의 각라도에서 사내아이를 출산, 섬에서 낳았다 하여 도군(島君)이라 했으며, 이때 군군은 다섯 아들을 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로왕은 나라 사정이 어려울 때라 일본에 있던 동생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고, 아들 하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왕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임신한 부인을 같이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섬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나 일본에서 왕을 지내면서 478년 송(宋)나라로 상표문을 보낸 왜왕 부(武, 무, 478~501)였다. 백제로 돌아와서는 25대 무령왕(武寧王, 501~522)이 되신 분이다. 가수리군은 송서(宋書) 기록에 왜왕 사이(濟, 443~455)로 나오며, 백제로 돌아와서는 개로왕이 되신 분이다.

    군군은 송서(宋書) 기록에 왜왕 고오(興, 455~477)로 나오며, 460년에 송(宋)나라에 상표문을 보낸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그를 유라꾸(雄略, 457~479)로 둔갑시키고 왜왕 고오는 유라꾸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지만 왕위는 동생이나 아들, 부인으로 양위되어 가는 것이므로 왜왕 고오와 유라꾸는 같은 사람이다.

    30대 민달(敏達, 571~585) 천황은 백제 마을에 백제대정궁(百濟大井宮)을 건립하고 즉위했다. 34대 서명(舒明, 629~641) 천황은 야마토의 중심부를 흐르는 강을 백제천(百濟川)으로 명명하고 강의 서쪽에 백제궁, 동쪽에는 9층탑을 세우고 백제사를 짓게 했다. 천황이 백제궁에서 서거했을 때 궁 북쪽에 빈궁을 지어 죽음을 애도했다. 이를 백제의 대빈(大殯)이라 불렀다.

    『일본서기』 29대 흠명(欽明)기에는 백제에서 서거했다는 성왕(聖王) 얘기가 나온다. 흠명 천황의 얘기보다 성왕의 기록과 백제 관련 기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대학의 고바야시 야스코 교수는 저서 「두 얼굴의 대왕」에서 29대 흠명천황은 백제에서는 전쟁 중에 죽었다는 소문을 내고 왜 열도로 건너와서 등극한 백제의 성왕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왕은 무령왕의 아들이었다.

    출처 : 울산제일일보(http://www.uj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