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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8.10

페르시아의 마니교는 어떤 종교인가요?

페르시아 제국에서 생겨났다고 하는 종교인 '마니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당시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국가 아니었나요?

마니교는 왜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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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니교가 어느 종교인지 궁금하군요.

    마니교는 사산 제국의 예언자 마니가 창시한 이란 계통의 종교로, 사산 제국(226~651) 시대의 주요 페르시아 영지주의 종교 가운데 하나이자 현존하지 않는 고대 및 중세 종교입니다.

    마니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마니가 저술한 본디 저작은 대부분 상실되었지만, 다수 번역서와 단편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니교에서는 선하고 영적인 빛의 세계와 악하고 물질적인 어둠의 세계 사이 투쟁에 관해 설명하는 정교한 우주론을 가르쳤습니다. 이 우주론에 의하면, 인간의 역사에서는 선과 악 또는 영성과 물질성의 투쟁이 계속하여 발생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선 또는 영성이 그 대립물인 악 또는 물질성을 극복하게 되며, 이에 따라 빛(영 또는 영혼의 에센스)이 물질 세계에서 점차 철수하게 되고, 마침내 그 자신이 발출되어 나왔던 본디 원천인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마니교는 기원후 3세기에서 7세기 동안 융성하는데, 그 절정기에는 가장 널리 퍼진 세계 종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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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는 성격이 다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악의 두 가지 힘이 존재하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마니교는 세상을 부정하고 금욕주의 정신주의를 추구합니다.

    페르시아인 "마니"가 "조로아스터교에 기독교와 불교를 가미"한 마니교(마니를 신으로)를 창시하였는데, 이 마니교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대운광명교(줄여, 광명교, 명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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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니교는 3세기에 '빛의 사도' 또는 최고의 '빛을 비추는 자'로 알려진 예언자 마니(Mani : 210? ~ 276)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운동에서 시작했습니다. 마니의 활동 초기에는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 불교의 여러 요소를 가미한 이단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되고, 그 교리가 일관되고, 체계가 확실히 잡혀가면서 고유한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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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페르시아인 마니(Mani, 216-276)가 3세기에 창시한 이원론적(二元論的) 종교인 마니교는 한때 인도, 중국, 지중해 연안 일대에 퍼져나갔으며 거의 세계적인 종교라고 할 만큼 널리 보급된 적도 있었다. 3세기초의 서부 페르시아는 풍성하고도 다양한 토착 외래종교와 신앙의 집합장소였다. 토속적인 고대신앙과 조로아스터교(拜火敎), 그리고 유태교가 그 중에 들어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시리아 교회에 소속된 아랍인들을 통해서 페르시아에 소개되었으며, 심지어 힌두교의 바라문(Brahmana)과 불교 승려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풍토에서 귀족가문 출신의 창시자 마니는 240년 무렵, 사산조(朝) 시대에 조로아스터와 그 밖의 예언자(모세, 예수)의 사명을 개선할 뿐 아니라, 그것을 완성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신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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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독교나 조로 아스터교의 이단으로 여겨지는 마니교는 3세기에 '빛의 사도' 또는 최고의 '빛을 비추는 자'로 알려진 예언자 마니(Mani : 210? ~ 276)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운동에서 시작했다고 전해 집니다. 마니의 활동 초기에는 기독교, 조로 아스터교 등의 여러 요소를 가미한 이단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拜火敎]에서 파생되고, 그 교리가 일관되고, 체계가 확실히 잡혀가며 고유한 종교로 자리잡았습니다. 마니는 오늘날의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24세가 되던 해에 계시를 받아 대중들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마니는 자신이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붓다, 예수로 이어져 내려온 예언자들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종교적 진리는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 여겨 선교 초기부터 전세계를 개종시키고자 활발한 선교활동을 했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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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는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부처, 조로아스터와 예수의 뒤를 잇는 최후의 예언자”라는 마니의 말에 따라 신도들은 열심히 포교했고, 마니교는 세계 4대 종교의 반열에 오를 만큼 성장했다.


    인류 역사에 출현했다 사라졌거나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종교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동물뿐 아니라 종교 역시 승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출발점에 섰을 때부터 모든 인간에게 받아들여진 종교는 없었다. 그 대신 초기의 박해와 억압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종교는 정치를 뛰어넘는 보편적 진리로 숭배되는 반면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 종교는 제한된 지역 종교, 이단, 사이비, 심지어 주술이나 무속 등의 이름으로 박제가 되어 백과사전의 한쪽도 차지하지 못하고 잊히기에 이른다. 사실 그 초기 모습을 비교해 보면 오늘날 대단한 규모로 성장한 종교들과 별 차이도 없었는데 말이다.


    마니교(Manichaeism) 또한 지금은 잊힌 종교지만 탄생 무렵에는 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216년 무렵 마니(Mani, 216~274?)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중간 지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이름은 마리아란 의미의 마리암, 그러니까 예수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이다.


    그가 젊은 시절을 보낼 무렵 페르시아 지방에서는 기독교와 유대교, 불교와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등 세상 대부분의 종교가 교류하고 있었다. 특별히 그 지역 사람들이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절름발이로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마니는 우연히 이십대 중반에 하늘의 계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를 융합한 새로운 종교, 전쟁과 살육을 부정하는 평화의 종교 마니교를 창시한 그는 대중을 상대로 하늘의 계시를 설교하게 된다.

    마니가 설교를 시작한 이래 마니교는 급속히 번져 나갔다. 이는 마니 자신이 자신의 교리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교리를 기록했고, 이를 정경(正經)으로 삼은 후 여러 언어로 번역해 포교에 적극 활용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마니교는 이후 서쪽으로 로마제국을 거쳐 에스파냐까지, 동쪽으로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정작 마니 자신은 조로아스터교 신봉자인 페르시아의 왕 바흐람 1세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데, 왕은 “하늘의 계시가 왜 나에게 내리지 않고 너에게 내렸는가?”라며 불만을 토로한 바 있었다. 그 불만은 급기야 사형 선고로 이어졌고, 26일간에 걸친 악형 끝에 마니는 순교했다. 그러나 마니를 죽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은 왕은 그의 시신을 찢고 거리에 팽개친 후 잘린 목을 성문에 걸었다. 당연히 교조의 죽음은 신도들에게 슬픔을 가져다주었는데, “나는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부처, 조로아스터와 예수의 뒤를 잇는 최후의 예언자”라는 그의 말에 따라 신도들은 열심히 포교했고, 마니교는 그 무렵 세계 4대 종교의 반열에 오를 만큼 성장했다.


    마니교는 영적인 지식(靈知, gnosis)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이원론적 종교에 속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악한 이 세상에서 구원 받는 길은 오직 지혜 또는 영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마니교의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마니의 예언은 정확했다. 마니교는 이후 5세기 무렵 기독교로부터 이단으로 판정받아 박해를 받았고, 로마제국 또한 모든 힘을 동원해 박해를 가한 끝에 마니교는 완전히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중국에서도 박해를 받아 14세기 무렵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마니교가 세속 권력과 조화를 이룰 수만 있었다면, 아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중세를 지배했던 지역에서 탄생하기만 했다면 1000여 년에 걸친 그들의 역사가 이렇게 쉽게 소멸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종교 역시 승자의 역사가 아닐까?

    출처 : 세상의 모든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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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후 216년에 페르시아의 이란 지역에서 출생한 "마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마니교라는 종교를 창시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전해진 불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종합하고 또 거기에 자기만의 교리까지 가미하여 마니교를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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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니교는 사산 제국의 예언자 마니가

    창시한 이란 계통의 종교입니다.

    사산 제국(226~651) 시대의 주요

    페르시아 영지주의 종교 가운데

    하나이자 현존하지 않는 고대 및 중세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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