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편찬기관과 편찬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한 왕대의 역사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실록편찬은 국가의 큰 관심사였는데요. 조선시대 문화수준을 한눈에 볼수 있는 귀중한 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기관과 편찬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 재위 시 사관들이 왕을 따라다니며 작성한
승정원일기를 기반으로 왕 사후에 편찬해왔습니다.
과거에는 춘추관과 사고 등에서 보관했으나 현재는 서울대 규장각,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보관중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제1대 임금인 태조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만든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왜곡된 것이 많아 포함시키지 않으며,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사가 담긴 방대한 기록이다. 임금이 죽으면 실록청을 세우고 그 임금이 다스리던 때의 역사적인 사실을 일어난 순서대로 정리했다.
실록의 내용은 《승정원일기》나 《비변사등록》과 같은 관청의 기록, 관청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 그리고 평소에 써둔 기록인 사초 등을 참고해 썼다.
실록을 만드는 관리는 사관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말이나 행동, 임금과 신하가 나랏일을 의논한 내용을 보고 들은대로 기록해 사초를 만들었다.
사관은 높은 지위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했고,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 사초는 비밀이 보장되었다. 설령 임금이라고 해도 사초를 함부로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록의 내용이 정치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선조실록》이나 《현종실록》, 《경종실록》 등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다시 고쳐 만들기도 했다.
예컨대 《선조실록》은 광해군 때 만들었는데,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 세력은 《선조실록》의 내용을 고쳐 《선조수정실록》을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가의 중요한 기록이기 때문에 혹시 잃어버리거나 훼손될 때를 대비해 여러 개를 만들어 전국 곳곳의 사고(책을 보관하는 창고)에 보관했다. 그런데도 《조선왕조실록》은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조선 전기에는 한양의 춘추관과 성주, 충주, 전주의 사고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고가 불에 타고 전주 사고의 실록만 무사히 보존되었다.
이에 조선 조정은 전주 사고의 실록을 바탕으로 4부를 다시 만들어서 춘추관과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마니산(나중에 정족산으로 옮김.) 등 깊은 산속에 보관했다.
하지만 춘추관의 실록은 1624년 이괄의 난 때 또다시 불에 타 사라졌다.
적상산의 실록은 나중에 창덕궁에 있는 장서각으로 옮겼는데, 8 · 15 광복 직후 일부를 도난당했고 나머지는 6 · 25 전쟁 때 북한이 가져가 김일성 대학에 보관 중이다.
일본이 빼앗은 태백산과 정족산본은 8 · 15 광복 후 돌려받았으나, 오대산본은 1923년 간토 대지진 때 대부분 불에 타 2006년에 나머지만 돌려받았다.
출처 : 한국사 사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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