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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말똥구리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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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나요? 주술적인 목적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진실은 무엇인가요?

돌하르방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모른다고 하는대요. 만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는 악귀들을 막는 주술적 의미로 만들었다고 묘사 되는데 진실은 무엇일까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의 유래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명확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돌하르방은

      제주도에서 장승을 대신하여 세워진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아 있는 향토자료를 보면 주로 성문의 입구나 길의 입구에 세운것이리고 합니다.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한데, 이를 토대로 본래 남근석을 세워둔 것이 조선시대로 오면서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사람 모양의 돌하르방으로 고쳤던 거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은 수호신적, 주술적, 금표적 기능을 한것으로 추정되어 육지의 장승과 그 기능이 비슷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석상들의 제작 연대는 아직 확실하지가 않다. 김석익(金錫翼)의 『탐라기년(耽羅紀年)』에 의하면, 1754년(영조 30) 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세웠다고 되어 있는데, 이 기록은 제주성의 것들을 만들어 세웠다는 것인지, 정의현성·대정현성의 것들도 이해에 같이 만들어 세웠다는 것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만일 3현의 것을 함께 만들어 세웠다는 기록이라면 같은 목사의 지시로 만들어진 3현의 것이 각각 그 형태가 다른 까닭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석상이 지금은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지만, 본래는 제주현·정의현·대정현의 성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성문은 동문·서문·남문이 있었고, 정의현성·대정현성의 경우는 이 3문 앞길 양쪽에 2기씩 4기를 마주보게 세웠다. 따라서 정의현성·대정현성의 경우에는 이 석상이 각각 12기씩 있는 것이다. 제주성의 경우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3문의 앞길은 방어상 유리하게 S자형으로 되어 있다.


      성문에서 약 35m 나아가면 길은 한번 오른쪽으로 굽이돌고, 다시 약 50m 나아가면 길은 다시 왼쪽으로 굽이돈다. 이 첫째 굽이의 길 양쪽에 돌하르방을 2기씩 4기를 마주보게 세우고, 다시 둘째 굽이의 길 양쪽에 같은 모양으로 4기를 세워, 도합 8기씩을 세워 놓았었다.


      이 경우 유의해야 할 것은 길 한쪽의 돌하르방의 기석 앞면에는 모두 ‘ㅁ’형의 구멍이 패어져 있고, 다른 쪽 것의 기석 앞면에는 모두 ‘『’형의 홈이 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제주의 민가에 대문 대신 ‘정낭’이라는 나무를 가로 걸쳐놓아 출입을 금지하였듯이, 긴 나무를 가로 꿰어 걸쳤던 홈이 아니었나 추측되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 나무는 출입금지의 표지였을 것이다.


      대체로 돌하르방은 성문 앞에 서서 성안 관아의 위용을 보이고, 성문 앞이라는 경계표지 및 금표(禁標: 금지의 표식)로서의 구실을 하였을 뿐 아니라, 성문의 수호신으로서 성안의 안전을 지키는 종교적 기능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점은 장승의 기능과 비슷하며, 그 형태도 돌장승과 유사하다. 이런 석비형(石碑型) 장승류는 마을수호신 내지 경계표석인 입석(立石)에서 온 것으로 제주도의 그것은 조형예술성이 특이한 점이 특징이다. 현재 1971년 제주도 민속자료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