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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한메추리59
씩씩한메추리5923.01.24

차례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차례상은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전통 풍습으로 알고있습니다.

차례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차례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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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차례상은 유교적 영향을 받은 것이 진하지만 7세기 중국의 사서에 나옵니다.

    삼국시대부터 전해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해진 시기는 확실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구글링 하시면 도움이 될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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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사는 신이나 신령, 조상 등에게 봉헌하는 의식은 유교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교에서 관찰되며, 지중해 문화권의 고대 종교들에서는 훌륭한 제사는 경건함의 주요한 예시였으며, 동아시아에서는 갑골문에 수많은 제의를 확인할수있습니다.

    오늘날 종교가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종교가 공적 영역으로 인식되던 고대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신심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제사가 자연스럽게 중시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제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문화권 바탕에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이 섞여 형성된것으로 고대 중국 상나라의 왕조갑이 주변 토착신을 배제하고 조갑의 직계 조상만 섬기는 조상신 풍습을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조상을 섬기는 문화에서부터 제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명말했지만, 주나라는 위에서 조갑이 퍼뜨린 풍습을 따라 상나라의 제사방식을 이어받았으며, 상나라의 전 지도층을 제후로 임명해 상나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속 이어가도록했으며, 이는 다른 가문의 제사가 끊기게 하면 그 사람에게 제사가 끊어진 조상 귀신들이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기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사는 조상제사가 대부분이며, 근세에 이르러 유교와 결합하면서 조상숭배의 제도로 고착되었으며,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정교가 분리된 후 황제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도 사용했습니다.

    다만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의 왕은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낼수 없고, 왕조의 조상인과 땅의 신에는 제사를 지냈으며, 대한제국 선포후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가정에서는 효의 의미를 가져 가문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종교적 면은 사후 세계의 인정을 통한 유교 특유의 간접적 영생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고려, 조선 전기까지는 아들땅 상관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받고, 제사의 주체에서도 남녀차별이 없었습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출가외인이라는 개념이 없어 남녀 구별없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셨으며, 기혼 남성이 돌아가진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시집간 누나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조선 중기 후 소중화 의식이 강해지며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아버지의 재산 2/3을 받고, 나머지를 다른 아들들이 나누고, 딸은 받지 못하는 인습이 집성촌일 경우 현재까지 유지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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