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가 가장 비판받았던 실책으로 집권 당시 이해관계가 비교적 일치하던 서인세력을 비판한것, 또 소현세자가 병사하자 원칙에 의하면 소현세자의 장남이 세손이 되어야 하나 이걸 무시하고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만들었고 소현세자의 정실 민회빈 강씨까지 역모를 꾀했다며 세자빈을 폐한 후 신하들의 반대에도 사약을 내렸습니다.
이때 강빈의 시녀들을 국문해 10명 중 7명이 죽어나갔는데도 1명도 끝끝내 시인하지 않자 추측과 단정으로 비망기를 내리며 결과적으로 유일하게 인조의 정책에 동의하던 권신 김자점의 , 효종 초의 김자점 역모 사건 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