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조선 시대에는 양반,중인,상인,천민과 같이 신분제도가 철저하게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때부터 전체 인구의70%가까이 되었다는 역사기록을 보았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사회적 기준과 법제적 기준의 갭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된다고 합니다. 철종 시대에는 전 국민의 70%가 양반이 될 정도가 되었다는 일본 학자 미야지마 히로시의 통계는 조선시대 호적에서 유학호로 기재된 것을 양반으로 취급한 것으로, 실제 사회에서 통용되던 양반의 수가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경제력을 이용해 양반을 살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가의 재정이 부족해지자 국가는 납속책(일정 금액을 내면 노비를 면천시키는 것), 공명첩(일정 금액을 내면 양반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는 것)을 발행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