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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

정감록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든 책인가요?

정감록은 조선의 대표적인 예언서라고 하는데요.

이 책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 알려져 있나요?

그리고 조선에서 금서가 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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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감록』은 조선시대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던 도참서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언서로, 여러 가지 감결류와 비결서를 집성한 것이며 이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저자나 성립 시기는 분명치 않다. 반왕조적이며 현실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조선시대 이래 금서에 속하여 민간에서 은밀히 전승되어 왔다. 난세에 풍수설에 따라 정해진 피난처에서만 복을 누릴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정씨 성의 진인이 출현하여 이씨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동학을 기점으로 속출한 한국의 종교운동과도 맥이 닿아 있어 민중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감록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감록 저자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조선 시대 성리학이 수용되어 유교적 합리주의가 보편화되면서 신비주의적 도참사상은 큰 영향력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기묘사화라는 정치적 격변기에 조광조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참설로 인해 죽음을 맞았고, 정여립의 난에서는 ‘목자망전읍흥(木子亡奠邑興)’이라는 참설이 돌았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은 술사의 예언에 따라 궁궐 공사를 무리하게 강행하여 비판 받기도 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예언서인 정감록이 민간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실제로 무신란의 과정에서 활발히 전파되기도 하였습니다. 철종대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에서도 각종 예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선 정부는 혹세무민하는 도참이 유포되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사회가 혼란하거나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 때 도참은 더 활발히 유포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감록은 일종의 예언서인데 정감록이라는 제목 때문에 세간에는정도전이 저술했다고도 하고, 혹은 정여립이 저술했다고도 하지만 설득력은 없습니다. 조선 시대 문제작이 된 이유는 바로 바로 '정 씨가 왕이 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나라로, 정 씨가 새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은 당시 금기시된 이야기였습니다. 반란을 예언했으므로 정감록이 금서로 지정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