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손은 이릉대전에서 유비의 촉군을 대파하며 오나라의 명장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이후에는 그만큼 대규모 전과나 명성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릉대전 이후 오나라는 촉나라와의 대규모 전면전이 줄었고, 위나라와 국지전이나 방어전이 주가 되었습니다. 육손이 활약한 만한 대규모 전투 기회가 많았습니다. 또한 내정과 조정의 권력 다툼에 더 많이 관여하게 되어 전장보다는 조정에서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리고 손권의 후계자 분쟁 등 복잡한 요인으로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심적 고통을 겪다가 사망했습니다. 이는 육손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오나라의 전반적 상황과 권력 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