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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소보로크림빵
단팥소보로크림빵23.05.10

청도는 왜 소싸움으로 유명하나요?

청도를 여행가면 소싸움경기장이 있더군요 아주옛날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소싸움을 즐겼다는데 청도가 왜 소싸움으로 유명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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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도 소싸움은 처음에는 마씀들이 소박하게 소쌍움을 시키는 재미에서 시작되었다가, 마을간의 경쟁으로 커졌다고 합니다.

    인접한 두 마을 봉기리와 현리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 매년 추석 1-2일 후에 소쌍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때에는 어떤 우승 상품도 없이 두 마을간의 승부욕으로만 진행 되었다고 합니다. 싸움에서 이기면 풍물패를 앞세우고 머슴이 소를 타고 돌아오면 소 주인집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이런 전통이 오늘날 까지 이어져 내려와 지금의 청도 소싸움 민속놀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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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0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도소싸움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문헌상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땅에 농경문화가 정착한 시대에 목동들이 망중한을 즐기기 위한 즉흥적인 놀이로 시작하여 차차 그 규모가 확산되어 부락단위 또는 씨족단위로 번져 서로의 명예를 걸고 가세(家勢) 또는 족세(族勢)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주로 추석 놀이로서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민족의 협동단합을 제압하기 위하여 이를 폐지시켰으나 그 명맥을 조심스레 이어온 터에 마침내 광복을 맞아 부활되어 그 맥을 이어오다가 70년대 중반부터 고유의 민속놀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난 90년부터 영남 소싸움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3.1절 기념행사로 자계서원 앞 넓은 서원천변에서 개최되는 소싸움이 해마다 규모가 커지게 되어 이제는 우리 나라 최대 규모의 소싸움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소싸움은 소가 한곳에 모여 풀을 뜯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게 되고, 소의 주인도 자기네 소가 이기도록 응원하던 것이 발전하여 사람이 보고 즐기는 소싸움으로 변하게 되었다.

    출처: 청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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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목동들이 망준한을 즐기기위해



    즉흥적인 노리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규모가 확산되어 부락단위 더 큰단위로 번져



    소로에 명에를 걸고 과시의 장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몸무게에 따라서 체급이 정해지며



    주인이 직접 추첨하여 대진표를 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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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90년대 친목단체인 청도투우협회 회원을 중심으로 개최된 제1회 영남 소싸움대회가 유래이며 그때는 경기장이 없어 자계서원앞 서원천 변에서 진행되다 이후 소싸움축제가 유명해지며 돔식 소싸움 경기장이 만들어지고 2009년부터 전용 소싸움 경기장에서 개최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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