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입장에서는 왕이 된 후 조강지처인 신씨를 억울하게 떠나 보내야 했었는데요.
신씨를 그리워한 중종과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도 있구요.
장경왕후가 죽은 뒤에 폐비 신씨를 다시 복원하려는 상소를 중종은 왜 거절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