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점차 늘어난 재조선 일본인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1876년 개항 당시 부산에 있던 일본인은 54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1879년 원산 개항과 1880년 원산의 일본 영사관 개설, 1883년 인천의 개항과 일본 조계의 설정, 그리고 같은 해 한성(서울)의 개방 등으로 차츰 증가해 갔습니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에는 4,356명, 청일 전쟁이 일어난 1894년에는 9,354명이 되었습니다. 러일 전쟁 후 일제가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어 통감부를 두고 각지에 이사청을 설치한 뒤부터 일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1905년 말 42,460명, 1906년 말 83,315명이었고, 강점 직후인 1910년 말에는 171,543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후 재조일본인은 1919년에는 346,619명, 일본이 패전한 1945년에는 약 8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71만명이 단돈 1000엔을 들도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10만명 가량은 여러 이유로 한국 이름으로 창씨개명하여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 서울 용산구 이촌 1동에는 1000명이 넘는 일본인이 거주해 리틀 도쿄라 불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