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와 같은 예전 기록에 따르면 대략적으로 국력은 위촉오 순서대로 6:1:2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행정구역 자체도 중국 12개주 중 10개주를 위나라가 가지고 있었고, 오나라는 2개, 촉나라는 1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모집 가능한 병사 수도 촉의 병사 수를 1로 본다면 오나라가 3배, 위나라가 5배 정도로 모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촉이 보유하고 있던 익주 자체가 중국에서 메인이 아니기도 하였고, 오나라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가 아닌 호족 연합체로 보는 경향이 있어 위나라가 압도적으로 강력하게 메인 국가였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다만 위나라는 촉/오 외에도 북쪽의 유목민족이나 고구려와도 대립중이었기에 한동안 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가 촉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국력에 강했습니다. 위나라는 본래 황허가 유역의 비혹한 화북 지역을 거점으로 인구 440만 이상의 국가였습니다. 이와 비교하여 촉나라는 사천의 산악 지역의 인구 90만 정도였습니다. 즉 위나라는 넓은 평야와 인구로 세수, 군수 생산이 안정적이었고, 조조는 둔전제를 통해 자영농민을 육성을 통해 국가 주도의 경제를 강화했습니다. 반면 촉나라는 지형적으로 폐쇄적이고 방어에는 유리했으나 확장이 제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