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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나
잠이나23.09.11

곤장은 무조건 하의내리고 맞았나요?

태형을 선고받으면 조선에서 맨살에 맞았다고하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곤장형에 처해지게되면 엉덩이의 맨살을 드러내고서 맞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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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1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곤장으로 죄인의 볼기와 허벅다리를 번갈아 치던 형벌입니다.

    장형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형벌이었지만, 곤장이 장형보다도 고통이 훨씬 심했으며 더 위험했다고 합니다.

    곤장은 군율을 어긴자 혹은 도적들에게만 사용하는 특별형벌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장형을 집행할 때는 하의를 모두 벗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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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자는 하의를 내리고 맞았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살을 드러내지 않도록 얇은 옷을 입은 채로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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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성의 경우 단의결벌이라는 원칙으로 간통죄가 아니면 속옷은 입고 집행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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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처음엔 여자들도 옷을 내렸습니다.

    수치심에 자살을 하여 얇은 속옷을 입히고 곤장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주기 위하여 물을 뿌렸다고 합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판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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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곤장형에 처해지게 되면 엉덩이의 맨살을 드러내고서 맞았습니다. 곤장형은 태형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형벌 중 하나였습니다. 곤장은 대나무로 만든 채찍으로, 곤장형을 가할 때는 죄인의 엉덩이를 드러내고 곤장을 맞았습니다.

    곤장형은 신체적 고통을 주는 형벌이었지만, 정신적 고통도 함께 주는 형벌이었습니다. 곤장형을 받으면 엉덩이가 크게 상하게 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곤장형을 받으면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곤장형은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명시된 형벌 중 하나였습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곤장형은 죄의 경중에 따라 10대에서 100대까지 가해질 수 있었습니다. 10대는 비교적 가벼운 형벌로, 100대는 매우 중한 형벌로 여겨졌습니다.

    곤장형은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된 형벌이었지만,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조선의 개화파들은 곤장형을 비인도적 형벌로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곤장형은 폐지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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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때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장형을

    집행할 때는 여성 엉덩이에 물을 끼얹어때리기 좋게 한 물볼기란 방법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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