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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경찰관서는 포청(捕廳)으로 약칭되기도 하였다. 성종 때부터 중종에 이르는 동안에 그 제도적 완성을 본 것으로, 좌포도청 ·우포도청으로 나누어, 좌포도청은 한성부 정선방(貞善坊) 파자교(把子橋) 북동쪽(서울 종로구 단성사 일대)에 두고 한성부의 동부 ·남부 ·중부와 경기좌도(京畿左道) 일원을 관할하였고, 우포도청은 서부 서린방(瑞麟坊) 혜정교(惠政橋) 동쪽(서울 동아일보사 일대)에 두고, 한성부의 서부 ·북부와 경기우도(京畿右道)를 관할하였다.
포도청은 병조(兵曹)에 딸린 무관직소(武官職所)로, 순조와 고종 때에는 좌 ·우 포도청에 각각 포도대장(종2품) 1명, 종사관(從事官:종5품) 3명, 군관 70명, 포도부장 4명, 포도군사 64명, 무료부장(無料部長) 27명, 가설부장(加設部長) 6명, 겸록부장(兼祿部長) 32명, 서원(書員) 4명, 사령(使令) 3명 등이 있었다. 좌 ·우 포도청에서는 각기 8패(牌:組)로 나누어서 패장(牌將) 8명과 군사 64명을 동원해서 담당구역을 순찰하였다. 1894년 포도청을 합하여 경무청으로 개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