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대전의 원인은 어떤거였나요?
지금도 세계는 전쟁 중인 나라가 있는데 세계 제 1 차 대전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전쟁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디가 승리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00년 간의 평화 시대 속에서 지속적인 팽창을 이룬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과 그 과정에서 소외된 독일 제국으로 대표되는 신흥 제국들의 불만, 유럽 내 민족주의적 갈등 등 다수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을 중심으로 한 삼국 협상과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을 중심으로한 삼국 동맹이 형성되었고 이들 두 동맹체 간의 대립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19세의 세르비아 민족주의 혁명가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였다. 삼국 동맹 소속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에 분노해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때 세르비아를 같은 슬라브족 국가로써 보호하던 삼국 협상 소속의 러시아 제국이 반발하며 총동원령을 내리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동맹인 독일 제국이 러시아 제국과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영국은 느닷없는 발칸 반도의 분쟁이 전 유럽을 휩쓰는 대규모의 전쟁으로 커지려고 하자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 제국이 슐리펜 계획에 따라 영국이 독립을 보장하던 벨기에를 침공하자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참전을 선언한다. 일본 제국 또한 영일동맹에 근거하여 독일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1914년 11월에는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면서 전역이 캅카스와 중동으로 확대되게 된다. 이탈리아 왕국은 1915년 참전했고, 미국은 이어서 1917년에 참전했다. 단순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간의 분쟁으로 끝날 수 있었던 전쟁은 당대의 주요 열강들이 협상국과 동맹국이라는 2개의 동맹체 아래 모두 말려드는 세계 대전으로 확대되고 만다.출처: 나무위키 1차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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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은 20세기 최초의
대규모 국제 분쟁으로 기록된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가 후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소피 배공비가
암살되면서 1914년 8월에 시작되어
이후 4년간 여러 국가로 확전되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3국 동맹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3국 협상의 충돌로 일어났으며,
이 두개의 세력을 잘 보면,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는 빈약한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나라들 입니다.
산업 혁명 이후로, 유럽의 각국은 엄청난 물량을 생산할 수 있었는데, 이는 자국 소비를 넘는 양으로
물건을 팔 곳이 필요했죠.
예전 스페인이나 포르투칼이 취했던 식민지 정책은 기본적으로 약탈, 살인, 노예 무역, 대단위 노예 농장 등으로 식민지를 수탈하는 정책이었다면, 영국, 프랑스 등은 자국에서 생산한 엄청난 물건을 내다 팔 시장이 필요했죠.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식민지가 적었고 이것으로 쌓여있던 불만이 사라예보에서의 2발의 총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는 사라예보 사건으로 1914년 6월 28일 육군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해 발칸반도에 위치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는 세르비아 러시아계 한 청년이 쏜 총에 암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암살자는 세르비아계 청년 프린치프로 당시 19세였습니다.
당시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에 흩어져있는 세르비아 민족들을 모아 더 큰 나라를 세우려했지만 오스트리아가 이를 막았고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편을 드는 나라들 각각 두 진영으로 나눠졌습니다.
또, 경제적인 이유로는 19세기 이전은 식민지는 자원 약탈의 대상이었으나 19세기 이후 자원판매 시장으로 바뀌고 이때 독일은 1871년 1월 뒤늦은 통일로 열강보다 한발 늦게 산업화가 진행되며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이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이 식민지를 독차지하고 있었고 이에 독일 제상 비스마르크는 화학과 과학 기술에 집중을 하게 되고 어느 열강보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합니다.
독일은 식민지와 자원에 대한 열망이 강하였고 독일은 우크라이나를 원했고 독일 통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전쟁을 일으킬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와 프랑스는 세계 최강의 육군 국가였고, 영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국가를 이기려면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이 당시 러시아, 프랑스, 영국은 삼국 협상을 통해 편을 이루고 있었고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는 삼국 동맹을 통해 서로 간의 군사원조를 한다는 안전보장 체제를 갖추고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시라예보 사건을 구실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고 이것이 제 1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그 후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 이틀 뒤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 독일 군이 중립국 벨기에를 통과하자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이 전쟁은 점차 민족 간의 싸움으로 번져 결국 거대한 두 세력 독일계인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그리고 오스만 제국 등의 동맹국과 다른 세력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뭉친 연합국 전쟁으로 확대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세르비아 청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암살한 것을 계기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여타 국가들(러시아, 독일 등)이 가담 함에 따라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약 1개월 후에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의 다른 유럽 국가들이 참전하면서 전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복잡하며, 근대화와 제국주의로 인한 군비경쟁, 지역 간의 역사적 갈등과 국면전황,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동맹체제 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인들이 일정 수준까지는 해결이 가능했으나, 그리스도교 세력에 의한 서방 문화권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가 도입된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는 식민주의와 분쟁의 소지가 커졌습니다.
이 전쟁에서는 전세계적으로 70개국 이상이 참전하였고, 전투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800만명 이상, 총 사망자는 약 1600만명에서 2000만명 이상이라고 추산됩니다. 전쟁은 1918년 11월 11일, 아르미스티스 협정으로 종식되었으며, 승자는 주축국인 독일을 비롯한 중앙국가들이 패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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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를 죽이고 나서 세계에서는 세르비아 편과 오스트리아 편으로
나누어서 전쟁을 벌이기 시작을 하였고
유럽 여러 나라들이 각자 응원하는 나라에서 하게 된것이 1차 세계 대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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