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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테리어2
세심한테리어223.11.19

6.25전쟁당시 휴전협상시기때에 갑작스레 사상자가 급증했다고 하는데 무슨일이 잇었나요?

6.25전쟁의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이래로 인천상륙에 중국군 개입까지 수많은 일과 교전이 잇었지만 이것은 약과에 불과하고 휴전협상동안에 이때까지 쌓인 사상자를 가뿐히 뛰어넘어 엄청난 숫자로 급증했다고 하는데 협상사이 어떤일이 잇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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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산지가 많은 한반도의 특성상 전쟁의 전개도 대부분 고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50년 겨울 중공군의 참전으로 37도선까지 내려간 전선이 다시 38도 이북으로 올라갈 즈음 휴전 협정이 양측에서 조율됩니다.

    이유는 이미 1.4후퇴와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및 이에 대응한 반격 등을 거치면서 양측 모두 상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낼 힘 없이 사상자만 계속 속출하는 소모전이 되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나 협정이 진행될 동안 양측이 싸움을 멈추기로 합의한 건 아니었으므로 보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한 대대급 수준의 고지 쟁탈전이 51년 하반기부터 간헐적으로 시작됩니다.

    일단 고지를 확보하면 그 위에서 주변 전황을 둘러볼수 있었고 일대의 적들을 향해 사격 및 포격을 보다 멀리 더 정확히 가할수 있게 되며, 고지를 보다 많이 확보해 거기에 진지와 기지 등을 지으면 향후 전쟁이 재개 될 시 방어측에선 시간벌이, 공세 측면에서 그만큼 시간절약, 기동이 유리했기에 서로 고지 쟁탈전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몇몇 고지는 계속된 쟁탈과 포격, 폭격 속에 곳곳에 화약과 피 냄새 진동하는 민둥산이 되며, 가칠봉 전투에서 아예 시체들을 모아 진지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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