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곽재우는 의병을 이끌고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그를 철저하게 견제하였습니다. 이는곽재우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조정의 통제를 벗어난 활동을 한 점과 선조가 무장한 의병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웠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곽재우는 몇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모함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절친한 친구인 김덕령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