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장은 어떤식으로 진행되었나요?
전두환 대통령의 사망후 국장으로 진행했던 기억이 있는데 때마침 관을 옮기는 차량행렬을 마주했었습니다
차나 기차같은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국장을 어떤식으로 진행했나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국장도 지금과 비슷한 형식이었는데 이동수단이 자동차가 아니라 가마꾼과 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행렬의 중간에 비통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꾼들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의 시신은 능에 안치되기까지 빈전에 안치합니다.
빈전은 주로 왕이 집무를 보던 편전이나 침전을 이용하며 국장도감은 장례시 소요되는 물건을 준비하는 기관이고 빈전도감은 장례기간 제사와 의례를 행하는 곳, 산릉도감은 왕릉의 축조 의무를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여름에 시신은 빙반이라는 냉동 영안실을 만들어 보관했고, 빙반을 바닥에 놓은 다음 그 위에 평상을 놓고 평상위에 시신을 올리고 마른 미역을 가득 쌓아 갈아 가면서 습기를 제거하게 됩니다.
산릉도감이 설치되면 지관이나 대신이 능을 조성할 지역을 결정하고 왕능이 결정되면 사방 십리안에 무덤들은 전부 파묘하였습니다.
빈전에서 능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것을 발인이라 하며 궁을 떠나 정해진 능지로 가는 행렬을 발인반차라 하며 발인을 하면서 길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노제의 라 했습니다.
대여는 궁궐문 밖에서 능까지 왕의 시신이 담긴 관을 운반하는 가마로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을 담배군이라 하는데 정조 발인에는 2200명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초기에는 백성들에게 부역의 형태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나 17세기 이후 인력을 고용하는 형태로 바뀌고 국장을 치르고 나면 국장도감의궤, 빈전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라는 3동의 의궤가 동시에 작성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과거에는 국장이나 왕의 이동은 대개 말과 수레, 걸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왕이 이동할 때에는 그와 함께 여러 관리들과 군사들이 함께 이동하였습니다. 이동시 필요한 짐과 물자들은 수레와 짐승들을 이용해 옮겨졌습니다.
또한 중국의 경우, 고대부터 지금까지 특급 운하인 '그란드 캐널'이 조성되어 수상 교통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국장이 이동할 때에는 이 운하를 이용하여 수상으로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족들이 여행을 할 때, '행차'라는 행사를 열어 백성들에게 인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왕족들이 왕에게 옷을 입혀주고, 차림새를 닦아주는 등의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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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장례식 국장은
사신의 발령 죽은 사람의 친척 중에서 일부는 사신으로 선발되어 경비병과 함께 출발합니다. 사신들은 죽은 사람의 대명, 생년월일, 사망일시 등의 정보와 함께 죽은 사람이 어떤 곳에서 살았는지, 어떤 일을 하였는지 등을 담은 사방서를 가지고, 친척들과 함께 조문을 받으러 다니면서 죽은 사람의 소식을 알리고, 조문객들의 충성심을 시험합니다.
국제의식(告至儀式, 국제의식) 사신이 궁궐에 도착하면, 국장을 담당하는 관원들은 죽은 사람의 집을 가서 국제의식을 준비합니다. 국제의식은 고을에 따라서 상세한 절차가 다르지만, 보통 죽은 사람의 시체를 받들어 죽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안치고, 죽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을 고조하면서 조상담례를 지내는 의식입니다.
발인 국제의식이 끝나면, 죽은 사람의 집에서 발인이 시작됩니다. 발인은 죽은 사람의 몸을 꾸미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어서 죽은 사람의 머리에 나무칼을 대고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발인용으로 보관합니다. 이후 죽은 사람의 몸을 꾸미고 횃불을 피워 발인의식을 진행합니다. 발인에서는 죽은 사람의 몸을 안치고 출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장지 발인이 끝나면, 죽은 사람의 몸을 안치고 차려입힙니다. 이후 발인에 참석한 사람들이 함께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남긴 채 장지를 진행합니다. 장지는 보통 죽은 사람이 살았던 곳 근처 무덤이나 산속 등에 시행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조선시대 장례식 국장이 치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