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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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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사상과 병자호란의 관계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정명수호와 척화파의 저항을 바탕으로, 병자호란 당시 조선 조정 내에서의 갈등과 그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조유성 전문가입니다.

    ✅️ 사실상 조선 조정 내에서는 척화론과 주화론이 대립했으며, 명나라에 대한 대의명분 vs 실리가 충돌했던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당시부터 이미 조정 내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조선의 건국 이념 자체가 성리학적인 국가 질서를 유지하며 명을 아버지로 모시는 것이었기에 당시 조정은 실리보다는 명분을 위해 명나라를 지지하고 청을 부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광해군이 실리외교를 텅해서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조정의 반대로 인조반정이 일어날 명분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 정명사상은 조선이 명나라를 정통 중화로 섬기며, 명에 대한 의리와 사대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던 사상입니다. 즉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와 왜군을 격퇴한 재조지은의 은혜에 감사하는 숭명의식에 대한 의식입니다. 그러나 1636년 후금이 청으로 개명하고, 조선에 사대를 요구해 왔습니다. 당시 조선은 정명사상을 바탕으로 서인의 김상헌, 정온 등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척화파와 최명길 등 남인들은 현실적으로 전쟁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백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청과 화친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서인은 정명사상에 기반한 척화파가 사대 요구를 거부하면서 병자호란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