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1636)의 배경은 황제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사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조종에서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의 척화주전론, 남인은 주화론을 주장하였으나 집권 세력인 사대를 거부하고 척화주전론을 주장하게 되자 청은 1636년 12만명의 군사로 공격하였습니다.
정묘호란으로 후금은 명나라를 멀리하고 후금과의 형제관계를 요구했으나 조선은 여전히 친명배금정책으로 일관하자 후금은 1636년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코자 하였으나 너무 빠른 진격에 강화도로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이후 40여일간을 버텄으나 더이상 식량이 떨어져 버티지 못하고 인조는 삼전도에 나와 숭덕제 앞에서 삼배고구례의 치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병자호란은 17세기 초에 일어난 중국과 조선 사이의 대규모 전쟁으로 인조 세자와 그의 아버지, 순조 세자의 정치적인 결정과 중국의 미국원의 내정 실패와 연결되어 있습니다.인조 세자는 조선의 다스림을 맡게 되자, 실용적이고 진보적인 내정을 실시했고 중국과의 외교적 협상에서 실패하여 중국에 대한 속국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어 중국과 조선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었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