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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코끼리20
친절한코끼리2023.06.03

조선시대 고종이 매관매직을 하였다는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고종은 무너져 가는 조선을

일으키려고 하였다기 보다는 무능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관매직 등을 하였다는데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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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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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0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벼슬을 돈을 받고 파는 행위.

    관(官)과 직(職)은 모두 벼슬을 가리키는 글자입니다. 직(職)은 그 외에도 ‘직분, 직업’과 같은 의미도 가집니다. 이 표현에서 조심해야 할 글자는 앞과 뒤의 매가 모두 팔 매(賣)라는 점입니다. 관직을 파는 데 중점을 둔 표현이거든요.
    반대로 다음 표현을 보실까요.

    조선시대에는 돈을 내고 합법적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공명첩이란 제도가 있었는데 조선 초에는 관리가 엄격해서 흉년 수해, 축성등 재정이 어려울때 판매 수를 정해서 명부를 작성하고, 왕의 국새가 찍힌 증서를 팔아서 관리대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문서와 비교해서 진위를 가릴수 있었다. 그마저도 진짜 벼슬이 아니라 품계만을 팔았다가 시대가 지나면서 팔리지 않자 점차 실직 이름을 내걸고 관직을 하사하는 '고신첩'을 판매했다. 무관 당상관직인 절충장군, 오위도총관, 첨지정사 따위가 애용 받던 직책. 그러나 상놈이 구입한다고 해서 양반이 될 수 없다. 조선에서 양반은 문과 과거 응시 자격이 있는 사대부에 한하기 때문에 당대에만 군역이 면제 될 뿐 자손들에게 신분을 물려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공명첩을 사서 자식이나 손자의 이름을 올려주는 경우도 자주 이용 되었다.

    조선 고종은 매관매직을 자주 행했다. 국가 세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민씨 척족들과 왕비와 함께 궁궐 증축, 치부 무속신앙, 서양물건 사치품 구입등 비자금 마련이란 목적이 더 크다. 고정 친정 이후 임오군란 뿐만 아니라 관리들도 녹봉을 고종 퇴위와 경술국치까지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공명첩의 가치가 급락한 시기인데 공명첩은 그저 벼슬의 이름만 팔았지만 이 쯤 오면 공명첩 따위가 아니라 과거 합격증인 공명홍패를 팔았다. 이는 양반의 신분을 그대로 파는것이다. 벼슬<<< 문과 과거 합격인게 공명홍패가 있으면 한큐에 집안이 양반이 되기 때문이다. 고종시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자 실직인 참판 판서 정승직도 팔기 시작했는데, 조선 관료제 연구자 임용한에 의하면 간혹 학생중에 종중 어른들이 영의정 증서 들고와서 이거 진짜면 족보에 올려야 되는거 아니냐 해서 가져오면 대부분 고종시대... 과거 실직도 아닌 당상관 무관 품계가 쌀 30섬 하던게 숙종 시기에는 10섬 수준이었다가 고종 시대에는 정승 영의정 벼슬이 쌀 몇섬 정도로 폭락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매관매직 [賣官賣職] - (팔 매, 벼슬 관, 팔 매, 벼슬 직)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2010. 9. 15., 기획집단 MOIM, 신동민), 나무위키 매관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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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매관 매직은 두종류인데

    하나는 일단 관직 가질 자격이있는자가 (실례로 게속된 과거 낙방으로)

    논밭 팔아 9품 이나 8품 을 매직 하는것을 말합니다 -------이런 매관 매직은 7품관이상 할수 없음

    두번째는

    납속책, 공명첩(納粟策, 空名帖) <납속책> 조선시대, 국가 재정의 궁핍을 메우기 위해 실시한 정책의 하나로서, 쌀이나 돈을 바칠 경우 그에게 적합한 상이나 관직을 주는것이나 역(役)·형벌을 면제해주든지, 또는 신분을 상승시켜 주던 제도 입니다 즉 실제 관직을 받지 않는것입니다

    다른것은

    조선후기 신분게급 질서 붕괴로 양반들의 호적을 상민에게 팔아 상민들이 신분을 상승 시키는것 이것은 매관 매직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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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이 매관 매직을 했다는 기록은 황현의 < 매천야록> 에 나오는 사실 입니다. 매천 야록에는 고종이 돈을 많이 좋아했다고하는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물론 여기에 기록된 것이 다 사실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신방성도 있어 보입니다. 결국 명성황후가 시해 되는 꼴을 당하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 간 것을 생각 하면 결국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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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고종은 실제로 매관매직을 자주 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국가 세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민씨 척족들과 왕비와 함께 궁궐 증축, 치부 무속신앙, 서양물건 사치품 구입등 비자금 마련이란 목적을 위해서 매관매직을 행했다고 합니다. 과거 합격증인 공명홍패를 팔기도 하였으며, 고종시대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자 실직인 참판 판서 정승직도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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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 말년에 고종은 덕으로 정치할 생각은 안 하고, 매관매직으로 황금을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단다. 그때 많은 선비들은 그렇게 보았다.(동영잠영록) 이를 한탄한 대신 신기선은 궁중의 매관매직을 뇌물수뢰죄라 단죄하며 눈물로 상소했다. “만약 뇌물을 근절하지 못하실 경우, 간신히 붙어 있는 나라의 명맥은 당장 끊기고 말 것입니다. 4천년 우리 강토가 외국인의 것이 되고, 2천만 백성은 포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고종실록) 신기선의 염려대로 조선은 곧 망하고 말았다.

    -출처: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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