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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3.21

데릴 사위제도가 있었던 나라는 어디인가요?

역사적으로나 현재에도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친정을 떠나 시댁위주로 생활을 많이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데릴 사위제도가 있던 나라도 있지 않았나요? 어떤 나라들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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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1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나 부여의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민며느리제로 유명한 옥저에서도 있었다고 한다. 사위가 처가에서 혼인 전, 혹은 혼인 후에 일정 기간, 혹은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것으로 민며느리와 함께 한국의 고대의 혼인의 한 풍속이다.

    일본의 데릴사위제도는

    전통적으로 혈통, 특히 부계 혈통보다는 가업을 잇는 것을 중요시했던 일본에서는 아들이 없더라도 딸이 있으면 데릴사위를 들여 가업을 계승했기 때문에 데릴사위 제도가 매우 발달한 편이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데릴사위 제도가 존재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양자(婿養子) 제도이다.

    본래 일본에서는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절대 따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아들이 없는 명가에서는 외손주를 통해 성씨를 이어 나가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부렸는데, 이것이 바로 데릴사위가 될 남성을 예비 장인장모의 양자로 입적시킨 다음에 딸과 결혼시키는 서양자 제도이다.즉,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어머니의 성씨를 따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씨를 따랐지만, 아버지가 양자라서 처가의 성씨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녀가 외할아버지의 성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서양자 제도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독특한 예외를 만들어냈다. 서양자들은 친부모의 호적에서 말소되고 장인장모의 아들로 입적되었기 때문에, 언제나 피가 이어진 가족보다 처가를 우선시해야 했으며, 죽은 후에도 본가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처가 묘지에 묻혀야 했다.

    그러나 그만큼 혜택도 상당하였는데, 딸만 있어서 대가 끊길 위기라 어떻게든 서양자를 구해야 했던 명가들은 서양자들의 신분에 비교적 관대했다. 부유한 평민의 아들이 사무라이의 서양자가 되고, 하인이 주인의 서양자가 될 수 있는 등, 서양자가 되는 것은 신분 상승의 큰 기회였다.

    서양에서의 데릴사위는

    과거 유럽 왕실에서 왕위 계승권 1위인 왕녀는 보통 외국으로 시집을 가지 않았다. 대신 외국의 적당한 왕자 하나를 자신의 나라로 데려와 남편으로 맞이했다. 물론 아무 왕자나 데려오지는 않았고, 3남 이하의 왕위 계승권이 낮은 왕자들을 주로 데려왔다. 데릴사위로 외국에 장가든 왕자는 아내인 왕녀의 즉위 후 국서가 된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시파히가 자신의 기독교인 남성 노예를 이슬람교로 개종시킨 후 데릴사위로 들여 가문의 후계자로 삼기도 했다.

    출처: 나무위키 데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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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데릴사위제도(Derilsoiwijedo)는 아버지 대신 아들의 사위가 왕위를 계승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었던 대표적인 나라는 고려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 내부에서 데릴사위제도가 시행되면서, 왕의 형제나 아들이 없을 경우에는 왕비의 가문 출신인 사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는 고려시대 왕실에서 정계에 대한 지속적인 분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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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데릴사위제도는 고구려의 결혼 풍습으로 어린 남자가 여자집에 가서 일정기간 생활 후 결혼하는 제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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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데릴사위제도가 있었습니다. 처가에 들어가서 살다가 아이들이 장성하면 독립하는 구조였고 노동력을 중시했던 고대국가의 특성이 반영된 것입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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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사에서는 데릴 사위제의 처음은 고구려에 서옥제壻屋制)라고 하는 데릴사위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서옥제에서는 혼인을 정한 뒤 신부의 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고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 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인데요서옥은 '신부집 근처에 만든 사위의 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조선전기(혹은 중기)의 율곡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가 처가인 강릉의 오죽헌에서 살았던 일도 데릴사위제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역사에서 데릴 사위제의 역사는 천년이 넘도록 이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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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데릴 사위(Dérridaire) 결혼 제도는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이전 참전 경험을 갖춘 기사나 군사들이 결혼할 때 부인에 대한 일종의 보호권이나 특권을 말합니다. 이러한 제도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1.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13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데릴사위 결혼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전 참전 경험이 있는 기사나 군사들은 결혼할 때 부인에 대한 보호권과 특권을 받았습니다.

    2.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데릴사위 결혼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전 참전 경험이 있는 기사나 군사들은 결혼할 때 부인에 대한 일종의 보호권과 특권을 받았습니다.

    3. 스페인: 스페인에서도 데릴사위 결혼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전 참전 경험이 있는 기사나 군사들은 결혼할 때 부인에 대한 보호권과 특권을 받았습니다.

    데릴사위 결혼 제도는 이전 참전 경험이 있는 기사나 군사들이 결혼할 때 부인에 대한 보호권과 특권을 받는 제도로 중세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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