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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좋아요 감사합니다!!
추천 좋아요 감사합니다!!23.05.20

훈요 10조와 관련된 질문드려요

고려 태조가 남긴 훈요 10조의 4번에 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에 본받지 말 것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때 당시 거란은 요나라를 세우고 발해를 멸망 시킨 상태가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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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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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0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을 짐승의 나라라고 한 이유는 당시 고려가 거란에 대해 맹렬한 적대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는 고구려의 뒤를 잇는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는 고구려 유민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인 발해를 침공하여 멸망시킨 거란을 원수처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정작 고려가 발해의 멸망을 걍 방관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고려의 적대 의식이 기이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고려가 발해의 멸망을 방관했던 것은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 발해가 멸망할 당시 최대의 적국이었던 후백제와 최후의 결전을 앞둔 상태여서 원군을 보내 줄 여유도 없었던 데다, 발해가 망한 것도 겨우 보름만으로써 순식간이었는지라 시간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것도 무리였기 때문이다.[25]


    그러나 이런 적대 의식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발해 유민들에 대한 포섭이었다. 발해 멸망 이후 수많은 유민들이 고려에 귀순했는데, 이들은 숫자도 엄청났던 데다 그 중에 왕족, 귀족, 고위군인 같은 엘리트 계층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고려의 국력을 급격하게 팽창시킬 수 있을 정도로 양질적으로 어마무시했던 인적자원이었던 까닭에 고려 조정은 이들을 어떻게든 포섭하고자 했다. 그래서 고려 조정이 이들을 후하게 대우해주는 것과 별개로 선택한 것이 이들의 반거란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은 조국을 멸망시킨 거란을 맹렬히 증오하고 있었으므로 국가 차원에서 거란에 대한 적대의식을 보여주고 복수를 약속한다면 이들을 확실히 고려의 세력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는 것이 고려 조정의 계산이었다. 만부교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발해 유민들의 문제와 별개로, 고려 스스로도 거란과 적대할 이유들은 매우 많았다. 고려는 북진정책으로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발해 멸망 이후 고구려의 고토를 점유하고 있었던 쪽은 거란족인 요나라였다. 즉, 장래에 고려가 거란과 서로 적국이 되어 영토분쟁을 벌일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고려도 이미 거란에 대한 적대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거란도 마찬가지여서 중원 진출 이전에 후방을 안정시키고 압록강 이남의 땅을 확보하기 위해 고려를 침공하려는 속셈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갈등이 점점 고조되던 양국은 후에 여요전쟁을 통해 마침내 충돌한다.


    출처:나무위키 훈요 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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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가 후삼국시대를 끝내고 통일한 936년에서 약 10년간 전 발해는 요나라의 침공으로 수도 상경용천부가 함락되고 왕실이 요나라로 끌려가 멸망한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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