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 전투 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제2차세계대전에서 소련과 독일이 전투를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 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독일이 패했다고 알고있는데, 그 결과로 어떻게 전세가 바뀌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비에트연방은 1939년 8월 23일 모스크바에서 독,소 불가치조약을 체결, 그러나 1941년 6월 22일 히틀러가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며 소련을 침공, 조약의 파기와 함께 독,소 전쟁이 발발 합니다.
이로 인해 독일,이탈리아, 일본 등 추축국 동맹군에 대항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연합군이 소련을 지원, 당시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는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도시로 블라디미르 레닌 사후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스탈린이 집권한 뒤 1925년 차리친에서 스탈린그라드로 개명되었고 캅카스 지역의 유전지대를 연결하는 주요 석유 공급로라는 이점으로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했던 히틀러는 스탈린의 이름이 붙여진 스탈린그라드를 차지함으로써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고자 합니다.
1942년 7월 17일부터 시작된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독일군의 제 6군 사령관이었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는 33만 병력을 투입, 600대의 폭격기로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하여 민간인 사망자만 4만명이 희생되나 초반 유리했던 전세와 달리 독일군의 전차부대는 소련군의 기관총부대에 비해 시가전에 취약했고 전투가 장기전에 돌입하자 소련의 혹한의 날씨를 견뎌야 했고, 군복과 식량도 고갈됩니다. 그해 11월부터 소련군의 반격이 이어졌고 결국 독일군의 무기 보급로까지 차단되면서 22개 사단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됩니다.
후방 부대의 지원병력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독일 제 6군은 2개월간의 저항 끝에 1943년 2월 2일 소련군의 공세에 항복, 히틀러는 포로가 되기 전 자결할 것을 종용하는 의미로 사령관 파울루스를 원수로 승격시켰으나 결국 파울루스가 항복하면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군의 승전으로 끝납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은 22만여명의 전사자, 9만 1000여명의 포로 발생, 추축국 동맹군도 30만명 이상의 피해를 입었고 이때 독일군 포로 중 생존자 6000명만이 1955년 독일로 송환, 소련군은 47만 8000여 명이 전사 65만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총 110만여명의 사상자를 기록했으며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심각한 전력 손실을 입은 독일군은 이후 1945년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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