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동교회의 역사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전에 인터넷기사보니 승동교회가 대한제국시절 지어졌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정말 오래된교회네요 승동교회의 역사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승동교회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교회의 설립 과정을 보면 1894년에 사무엘 무어(Moore, Samuel Forman) 선교사가 곤당골에 곤당골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후에 백정 출신인 박성춘씨가 세례를 받게 됨으로, 양반들이 갈라져 나가 동현에 홍문동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인 중에는 독립협회계 인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선교사를 구타하여 축출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일로 교인들은 분파되어 각기 교회를 세웠다. 독립협회계 교인들은 1904년 승동교회를 세웠고, 나머지 교인들은 남대문교회로 발전했다. 남대문교회는 북장로교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1919년 2월 20일 이 교회 지하에서는 당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명이 모여 3ㆍ1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또 이 교회에서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가 창립되어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봉사에 일익을 담당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3.1운동때 독립선언문이 이 교회 지하실에서 극비리에 인쇄가 되어 당시 당회장 차상진 목사가 일경에 의해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렇게 승동교회는 일제 때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4년 사무엘 무어 선교사가 곤당골에 곤당골 교회를 설립, 후 백정 출신인 박성춘씨가 세계를 받게 되며 양반들이 갈라져 나가 동현에 홍문동교회를 세웠고, 이 교인 중 독립협회계 인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선교사를 구타하여 축출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 일로 교인들은 분파되어 각기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독립협회계 교인들은 1904년 승동교회를 세웠고 나머지 교인들은 남대문교회로 발전, 남대문 교회는 북장로교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했습니다.
1919년 2월 20일 이 교회 지하에서 당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명이 모여 3.1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논의,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괴가 창립되어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봉사에 일익을 담당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이 교회 지하실에서 극비리게 인쇄되어 당시 당회장 차상진 목사가 일경에 의해 고초를 겪었습니다.
승동교회는 일제 때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한 곳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승동교회는 1894년 선교사 사무엘 무어가 곤당골에 곤당골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 후에 백정 출신 박성춘이 세례를 받자 양반들이 갈라져 나와 홍문동교회를 설립하였고 이 교인 중이에는 독립협회계 인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선교사를 구타하여 쫓아내려 했습니다. 이일로 교인들이 분파되어 각기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독립협회계 교인들은 1904년 승동교회를 세웠고 나머지 교인들은 남대문교회를 세웠습니다. 남대문교회는 북장로교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1919년 2월 20일 이 교회 지하에서는 당시 경성의 20여개 전문학교 학생들이 모여 3.1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논의한 바 있었습니다. 또 대한기독교청년연합회(YWCA)가 창립되어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봉사에 일익을 담당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3.1운동 당시에는 이 교회 지하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당시 차상진 목사가 일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승동교회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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