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이 아닌 문신 강감찬이 승리할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요?
마치 로마의 역대 최강의 장수 스키피오처럼 무신출신이 아닌 문신출신의 강감찬이 귀주대첩의 승리할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요?스키피오처럼 혼자서 병법이나 군사학을 따로 독학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인사대천명이라고 사람은 마땅이 할 일을 다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은 전쟁의 신도 아니고 고대 중국 한나라의 군사 한신과 같은 천재적인 병법의 달인도 아닙니다. 문신 출신으로서 때를 기다리고 부단히 준비하여 최선을 다해 요나라의 전쟁에 준비하였을 뿐이고 이에 천명이 남풍을 불어주고 적시에 지원군이 도착하여 귀주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겁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은 983년(성종 3년)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시랑 한림학사를 거쳐 평장사가 되었습니다. 1018년 서경유수ㆍ내사시랑 겸 내사문화평장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서경유수는 군권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란은 5세기에 발원하여 10세기에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국 북부와 만주를 우르는 동아시아의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기마유목민인 거란족은 문치주의를 바탕으로한 송나라 공격을 위해 송과 친교를 맺고 있는 고려를 먼저 쳐서 뒤를 안정시키려고 고려를 공격합니다. 소손녕의 80만의 1차 침입은 서희의 담판으로 물리쳤고 2차 강조정변을 구실로 요나라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2차 침입해와서 현종이 입조를 약조하여 물러갔으나 입조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배압의 10만 대군으로 3차침입을 감행했을 때 강감찬은 귀주에서 수공으로 공격하여 거란군을 섬멸하고 살아 돌아간 이는 수천에 불과하였습니다. 강감찬이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끝없이 때를 기다리는 끈기와 남풍이 불어 거란의 화살이 위력이 없었으며 수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강감찬이 지형지물을 제대로 이용하였고 때마침 바람의 방향도 남풍으로 바뀌어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은 경험이 많고 과거 등을 통해서 혼자서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첫 전투 나이가 6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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