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음악 이미지
음악학문
음악 이미지
음악학문
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03.24

판소리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됐는지 역사가 알고 싶어요.

판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엄청 듣기가 좋잖아요 이런 판소리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생기게 되었는지 그 역사가 알고 싶어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5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판소리의 발생에 관해서는 아직 뚜렷한 정설이 없다.

    다만 무가기원설, 육자백이토리설, 판놀음기원설, 광대소리기원설 등 여러 가지 학설들이 쏟아져 나와, 그 가운데서 의견들이 분분할 따름이다. 어진 화랑제도에서 판소리의 뿌리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화랑제도가 과거제도로 바뀌면서 예능에 능통한 일부 화랑들은 남사당을 조직하여 유랑하기도 하였고, ‘광대’란 말 역시 화랑의 방언이기에, 판소리의 근원을 신라의 화랑에 두는 게 옳다는 주장이다.
    그러는 한 편, 전라도 무속을 배경으로 한 무가에서 판소리가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특히 판소리의 음악적·문화적 풍신이 전라도 무속과 유사하고, 초기 소리 광대들의 출신이 거의 무당이었으며, 무당들 중에는 전라도 지방출신이 많았다는 점 등에서 판소리의 기원을 전라도 지방으로 유추하는 것이다.

    판소리를 생성시킨 주도 세력 또한 한강 이남의 시나위권,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무격(巫覡)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에도 시나위권의 단골(丹骨)들이 부르는 서사무가(敍事巫歌)의 연행 형태, 장단, 음조 등에서 판소리와 유사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주장은 타당성을 갖는다.
    즉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혼돈과 격변의 시간을 거쳐 급격히 확대된 평민층의 현실적인 불만과 욕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하층의 천민으로서 신분 변화를 꿈꾸던 무격(巫覡)들의 이상이 결합하여, 판소리라는 새로운 민속 예술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또 이후 고종 후기에서 일제하 1930년대까지는 '오명창 시대(五名唱 時代)'라 일컬어 진다. 이 때 활약했던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박기홍, 유성준, 김채만, 전도성 등의 명창 중 다섯을 골라 '오명창(五名唱)'이라 부르곤 하는데, 대개 송만갑, 이동백,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을 꼽는 게 일반적이다.
    현대로 넘어온 1940년 이후에는 김정문, 정응민, 공창식, 장판개, 조몽실, 임방울, 김연수, 박동실, 정광수, 성원목 등의 남자 명창과 이화중선, 박녹주, 김여란, 박초월, 김소희 등의 여류 명창이 나타나, 각기 판소리의 일가를 이루며 널리 활약하고 있다.


    판소리는 본래, 18세기 일반 서민들의 호응이 절대적으로 뒷받침 되어 독립하고 발전한 예술 장르였다. 그러나 이후, 점차 양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양반들의 기호에 맞는 내용으로 변화하였다.
    양반들은 사설의 윤색과 개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19세기 후반, 고창의 신재효(1812∼1884)는 구전(口傳)으로 전수되던 판소리 사설 가운데 여섯 바탕을 직접 문자로 정리하는 업적을 세웠다. 또 중인으로서 아전 출신이었던 그는,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많은 판소리 제자를 배출하고 후원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소리의 역사 (문화원형백과 판소리,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판소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입니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발림)을 섞어가며 구연(口演)하는 일종의 솔로 오페라와 같은 것입니다.

    17세기 한국의 서남지방에서,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숙종 말에서 영조 초까지 최선달과 하한담에 의해 시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판소리는 서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세기 말경에 문학적 내용으로 더욱 세련되어졌으며,

    도시의 지식인들 사이에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는 민속연희이기때문에 그 자체의 기록이 없고 향반의 방증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판소리의 창자는 광대이며 조선창극사에는 1930년대의 여러 명창들이 증언한 것을 토대로 하여 판소리는 숙종 말에서 영조 초에 걸쳐 하한담과 결성의 최선달에 의하여 시창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는 우리의 고유의 역사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판소리의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기록만 많아

    있어서 추측을 할뿐입니다. 대략 숙종때 기록이 남에 있기 때문에 조선 전기로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판소리는 한국의 전통 예술 중 하나로, 주로 전통 이야기나 민담을 이야기하는 노래와 함께 연주되는 타악기와 대금 등의 악기를 사용하는 공연 예술입니다. 판소리는 그 역사가 오래되어, 정확한 시기나 기원을 알기 어렵지만, 대략 고려시대에 형성되어 전해졌다고 추정됩니다.

    판소리가 처음에 형성된 이유는 정확히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야기를 전달하고 공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지식과 경험을 구전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판소리는 이야기와 노래, 춤, 악기 연주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조합하여 관객에게 높은 재미와 동시에 전통 문화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예술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판소리는 서민들의 문화로서 부상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예술이 궁중에서 유래되어 상류층의 문화로 귀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판소리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오면서 전국 각지에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판소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과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입니다.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것에 유래되었습니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판소리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30년(1754)에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재위 1674∼1720)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고,

    조선 전기 문헌에 보이는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가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소리는 19세기 후반 조선시대에 강원도 춘천지방에서 발생한 전통적인 민요와 음악, 춤, 대화 등 다양한 예술 요소들이 결합하여 형성된 예술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적인 특성과 사회적인 상황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1920년대부터 '판소리'라는 이름으로 통일됐습니다. 이후 1930년대에는 매우 인기 있는 예술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를 사용한 고어판소리도 등장하여 국민들의 국민성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 예술이었습니다.


    판소리는 주로 전통적인 이야기, 역사적인 사건, 천하제일무도회 등의 내용을 다루며, 5~6명의 연기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대화, 노래, 춤 등을 선보이는 공연으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판소리에서는 특유의 토박이 노래와 놀이, 그리고 강렬한 리듬감을 지니고 있어서 매우 독특하고 화려한 예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