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4세기 에서 3세기까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헤로필루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라는 두 사람의 그리스 의학자가 해부를 토대로 인체를 연구,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에서 인체 해부는 대부분 회피되어왔는데 이는 시체가 부정하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시체를 다루는 해부학은 악마의 학문이나 악마의 지식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기독교 문화권에 접어들어 무덤을 신성한 장소로 받아들이고 시신을 치유력과 마법의 원천으로 여겨 존중하면서 시체가 부정하다는 인식이 많이 누그러 들었고 중세 교회 당국은 연구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대부분 인간의 해부를 용인, 권장했습니다.
주로 종교적 목적이었는데 성인의 육신을 보존하고 기린다는 명목으로 내장을 적출, 유해를 나누고 성인이나 성녀의 내부 기관을 조사해 거룩한 증표를 찾아내거나 제왕절개라고 알려진 수술을 하여 죽은 산모에서 꺼낸 태아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의학교육과 연구를 목적으로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인체 해부는 1300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시작, 15세기 말 해부 수업은 북부 유럽의 의과대학에 처졌고 16세기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의과대학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는데, 이때 사용한 시체는 사형수의 시체가 많았는데 방부처리가 잘 안되어 시체가 썩는 일이 발생, 이때의 해부학 수업은 갈레노스의 책으로 이론을 학습하다 필요한 곳만 해부하는 식으로 전개되어 제대로된 해부학으로 보긴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