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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7

제주도 돌하르방 유래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학교 다닐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적이 있는데 기념품으로 돌하르방을 샀던 기억이 나네요 제주도는 돌하르방이 제일 유명하던데 돌하르방의 유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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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의 유래가 궁금하군요.

    2010년 3월 27일 발표에 따르면 가장 이른 시기의 석인상들은 모두 1980년대 이후 중국 요서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발견된 흥륭와문화(기원전 6200~5200년), 조보구문화(기원전 5000~4400년), 홍산문화(기원전 4500~3000년) 등의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만큼 유라시아 석인상의 기원은 요하문명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보는데 특히 제주도에서 총 47기가 발견된 돌하르방은 키 136~181cm의 석인상으로, 제작 연대가 확실하지 않으며 성문 앞에 세워져 있었던 탓에 경계표지 또는 성안의 안전을 지키는 종교적 기능 등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제주 돌하르방과 생김새가 매우 흡사한 중국 요(遼)나라(907~1125년) 시대 석인상이 만주에서 발견돼 돌하르방의 기원과 관련된 논쟁이 일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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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8.2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방기원설- 몽골로부터 전파되었다는 설로 몽골의 훈촐로오와 연관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남방기원설- 남태평양에 있는 발리섬의 석상문화가 해류를 타고 제주도까지 전파되었다는 설

    한반도 본토 유래설- 조선 중후기, 한반도 남부지방의 석장승 문화가 제주도를 통해 건너가면서 변형된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설

    자체생성설- 제주도에 거주하던 고대인들이 어떤 문명의 영향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형태로 제작했다는 설

    4가지 설이있으나 몽골 북방에서 들어온 북방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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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은 현재 제주시에 21기가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과 대정읍에 각 12기씩 24기가 있었다가 이 가운데 2기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있으며, 1기는 소실됐다. 조선시대 제주도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으로 나뉘었다. 세 곳의 소재지에는 성(城)이 있었으며, 성문 밖에 돌하르방을 세워 놓았다. 돌하르방이 세워진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다. 『탐라지』에 따르면 1754년(영조 30)에 제주목사 김몽규가 만들어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돌하르방은 후대에 아이들이 석상의 형상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문헌에는 옹중석(翁仲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우석목이라 불렀다. 우석목은 ‘우석(偶石)+목(木)’의 합성어이며 석상의 형태를 칭하는 ‘偶石’과 기능을 뜻하는 ‘木’의 복합어이다. 여기서 ‘木’이란 단어는 제주도의 집 입구에 세워 두는 정주목의 ‘목’과 쓰임새가 같다. 정주목은 집 출입구에 대문 대신 세우는 좌우 구멍이 세 개 뚫린 기둥을 말한다. 기둥으로는 흔히 목재와 석재가 쓰인다. 여기에 정낭을 끼워 우마나 외인의 침입을 막았다. 원래 나무로 쉽게 세우다가 비가 많은 제주도 특성상 썩고 부러져 돌로 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명칭은 재료와 관계없이 존속되었다.


    제주 민간에서 집에 정주목을 세운 뒤 정낭을 끼워 외부로 부터의 침입을 막았듯이 성문 밖에 우석목을 세워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 실제적으로 마주 선 우석목의 기단부를 보면 홈이 파여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돌하르방의 기단부를 보면 지상에서 무릎정도 높이에 한 쪽은 기역(ㄱ) 자로 파여 있고 한 쪽은 구멍이 나 있다. 이곳에는 정주목과 같이 나무를 꽂았을 것이다. 실제적인 외부 침입 방지보다는 통금을 상징하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외부의 사악함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돌하르방의 옛 명칭에 ‘목’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정주목에서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돌하르방은 성문 밖의 수호신 기능을 한다. 여기서 돌하르방을 세운 주체가 제주목사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육지부의 장승과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경계수호신으로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승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제작되어 마을 어귀에 세워지지만 돌하르방은 관청 소재지의 성문에 관 주도로 돌을 깎아 세웠다. 장승 세우기는 마을 주민이 주도하고 돌하르방은 관에서 주도한 것이다.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은 조선의 지방관청이 없애야 할 대상인 무속 신앙물을 성문에다 세웠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삼성혈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삼성신화는 제주도의 가장 대표적인 건국신화이다. 이 신화의 구조는 제주 무속에서 불리던 지상용출(地上湧出)신화와 같다. 당시 제주도 위정자들은 이런 무속신화를 왜 성역화 했는지 생각할 수 있다. 제주도는 조선의 가장 변방이자 가장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었고, 그 문화에는 무속신앙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중앙에서 파견된 위정자들의 입장에서 제주도민들은 교화의 대상이었다.


    제주도에는 무속신앙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당 오백, 절 오백에 불을 질렀다”는 이형상 목사의 얘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주민들을 중앙집권의 제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믿는 신앙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속신화를 건국신화화하였으며, 삼성사를 만들어 무속의례를 유교의례화했다. 우석목 또한 문을 지키는 정주목신을 받아들여 성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만든 것이다. 우석목은 위정자들이 제주민의 무속신앙을 받아들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속신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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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5.8.25일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성읍리의 것이 141.4cm 보성 안성 인성리의 것이 136.2cm의 크기로 보입니다. 조선시대 제주시는 제주목의 소재지로 성읍리는 정의현청이 보성 안성 인성리는 대정현청이 있던 자리로 본래는 주현의 성문 앞에 세워둔 것을 옮겨온 것입니다. 석상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큰 눈에 자루병같은 코를 가졌으며 입술을 다문 얼굴에 감투를 썼고 두 손을 배에 모으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 석상들은 성문 앞에서 위엄을 보이면서 수호신적 주술적 금표적 기능을 한 것으로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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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돌하르방이란 말은 근래에 생긴 명칭이고 원래의 이름은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등입니다.돌하르방이란 명칭은 돌 할아버지의 제주어로서 1971년 문화재 이름으로 채택한 이래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돌하르방은 행정구역이 3분되었던 약500년 동안(1416~1914) 제주목,대정진,정의진 도읍지 성문 앞에 쌍쌍이 세워 졌었습니다.모두47기가 있었는데 경복궁 한국 민속 박물관으로 2기가 옮겨져 지금 제주에는 45기가 남아있습니다

    47기의 돌하르방 형태는 조금씩 다르고 제주시의 것이 가장 커서 평균신장 181.6Cm, 성읍리 141.4Cm, 대정 136.2Cm 인데 제주시의 것이 더욱 위용있고 예술성 있게 조각 되었습니다

    돌하르방의 주요기능은 세가지로 압축됩니다. 즉, 수호신적 기능과 주술종교적 기능, 위치표식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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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제주 돌하르방의 유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제주 자생설

    제주 자생설은 돌하르방이 제주도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돌장승 문화의 영향을 받아 태어났다는 설입니다. 돌하르방의 형태와 유사한 석상이 제주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탐라지에도 돌하르방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북방(몽골) 기원설

    북방(몽골) 기원설은 돌하르방이 몽골의 전통 문화인 '옹중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입니다. 옹중석은 몽골의 성문이나 마을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석상으로, 돌하르방과 유사한 형태와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제주도는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어 이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남방 기원설

    남방 기원설은 돌하르방이 남태평양의 거인 숭배신앙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입니다. 남태평양의 일부 지역에서는 거인 석상을 숭배하는 문화가 존재하는데, 돌하르방과 유사한 형태와 의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제주도는 해양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설도 제기되었습니다.


    이처럼 돌하르방의 유래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주도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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