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외교적 중립정책과 전후 복구, 대동법 시행 등 개혁적 정책을 펼쳤으면서도 결국 폐위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폐모살제"라는 반인륜적인 행태가 반정의 명분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또한 광해군은 즉위 후 북인 중심의 정권으로 반대 세력인 서인을 숙청하였으며, 이는 적대세력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측근 이이첨 등 횡포와 궁궐 복원으로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사회 여러 계층의 불만이 쌓였습니다. 또한 중립외교도 전통적인 숭명배금 명분에 반발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