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두법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소개되고 있었는데, 본격적인 도입은 개항 이후 지석영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 수입된 우두법 관련 서적을 읽으며 우두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수신사를 통해 전해진 『종두귀감(種痘龜鑑)』을 읽은 후, 1879년에는 부산에 있던 일본인 병원 제생의원(濟生醫院)을 찾아가 종두법을 배웠다. 그후 두묘(痘苗)의 제조방법을 알기 위해 직접 일본에 건너가 일본 내무성 우두종계소장으로부터 채장법(採漿法), 독우사육법(犢牛飼育法)을 배우기도 했다.
지석영의 계속된 노력으로 전국 각지에 우두국(牛痘局)이 설치되었고, 우두 접종이 광범위하게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에서 사람들은 우두법이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임을 알고는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두법을 퍼뜨리고 있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런 반발심은 1882년 임오군란 때 폭발했다. 군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제일 먼저 우두소(牛痘所)에 불을 질렀고, 일시 집권한 대원군은 지석영이 외국으로부터 종두라는 마술을 수입하였다는 죄목을 내세워 체포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