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초 리스본이얼마나 발달된 최대도시였나요?
대항해시대 초기는 포르투갈도 잘 나갔다고 들었는데요
당시 핵심 도시인 리스본이 얼마나 발달된 최대도시였는지 자세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리스본은 15~16세기 항로 개척 시기는 리스본의 황금기였다고 합니다. 1498년 아시아와 중남미 등을 탐험한 원정대는 향신료와 노예·설탕·직물 등 많은 전리품을 가져왔으며, 식민지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번창해 나갔습니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으로,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 등과 같은 건물이 축조되었으며, 에마뉘엘 양식이라는 새로운 건축 양식이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580년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침략하여 왕권을 상실하고, 국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대항해시대는 신항로 개척이란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는 등 다양한 지리상의 발견을 이룩한 시대를 말합니다.
대체로 포르투갈 왕국의 엔히크 왕자를 주축으로 한 15세기 초중반의 대서양 방면 해외 진출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리스존은 15~16세기 세계 제국을 건설한 포르투갈의 대항해시대의 중심지였습니다. 즉 인도 항로 기점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브라질과 교역으류 제국 부흥의 싱징입니다. 리스본은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계지로서 번영하였으며, 현재는 유럽 연합의 중요한 재정적 경제적 중심지 중 하나입니다.
안타깝기도 리스본은 1755년에 역사적인 대지진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가지가 파괴되었지만, 폼발 후작의 지도로 바둑판 모양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리스본은 계몽사상을 구현한 근대도시로 변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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