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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홍여새152
차분한홍여새15220.02.10

라면의원조와 맛있게 먹는법 가르쳐주세요

요즘 라면조리기도 나오고 다양한 라면

종류가 나오는데

라면의 시작이 일본이라는 애기도 있습니다

국내 라면원조회사는 어디이고

라면 잘 끓이는법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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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면의 시초를 물으셨는데요.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일본으로, 1958년경부터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의 라면 개발에는 2가지 설이 있는데요.

    하나는 라면이 중국의 건면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중일전쟁 때 관동군이 중국인의 전쟁 비상식량인 건면의 맛을 보고 종전(終戰) 후 일본에서 건면을 식용유지로 튀겨서 보관하기 쉽도록 포장하고 별도의 수프를 개발함으로써 라면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요.


    또 하나는 1958년 '안도우 시로후꾸'라는 일본인이 술집에서 튀김요리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 라면제조법을 생각해냈다고 합니다. 즉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 기름에 튀기면 국수 속의 수분은 증발하고 국수는 익으면서 속에 구멍이 생기는데 이 상태로 건조시켰다가 필요할 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작은구멍에 물이 들어가면서 본래의 상태로 풀어지게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인데 이 두번째 설이 라면 개발의 일반적인 정설입니다.

    그 해 가을 일본의 일청(日淸)식품이 국수발에 간단한 양념국물을 가한 아지스케면(味附麵)을 [끓는 물에 2분]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판한 것이 그 효시이고, 1959년 에스코크, 1960년 명성식품에서 치킨라면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라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라면은 아지스케면 (味附麵)으로서 면(麵) 자체에 양념을 가한 것으로 시일이 경과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어 1961년 명성식품에서 현재와 같은 스프를 분말화하여 별첨한 형태의 라면을 생산하게 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삼양라면입니다.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15일에 출시되었는데요.

    당시 판매가격은 10원이었답니다.

    맛있게 먹는법................하루만 굶은 후에 드세요.최고의 맛일거에요

    http://ko.wikipedia.org/wiki/%EC%82%BC%EC%96%91%EB%9D%BC%EB%A9%B4 ☜ 콕 ~


    • 우리나라 라면의 시초는 1963년 9월 15일 삼양라면의 탄생과 출현이 시초였다.


      1950년대 한국의 경제가 거의 발전되지 않는 미약한 상황(거의 미국의 19세기 초반무렵의 상황과 비슷한)에 먹을 거리의 부족, 쌀배급 부진, 식량보급률 세계 최하위의 오명을 벗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 당국의 대체 식량 보급 확산을 하기 위한 또하나의 대책 중의 하나인 국수, 빵 등 대체 식료품으로 선택하다가 결국 삼양라면의 당시 전중윤회장이 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국내 식량 자급문제 해결 대책이 필요하기 위해 대한해협(동해안)을 건너 일본에 라면 시식을 하는 것을 보고 식량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길로 최종 선택된 것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1963년 9월 15일 삼양라면의 출현으로 국민들과 소비자들의 반응은 기존의 밥보다 더 훌륭하고 맛있고 끼니 해결을 할 수 있는 장사진을 이루게 하였다가


      얼마후 후발업체인 롯데공업㈜(現 농심)도 롯데제과 신격호회장의 동생인 신춘호회장의 조언에 따라 라면개발에 함께 나서기로 하였다가 롯데공업도 1965년에 라면사업을 개척한 데 이어


      1966년 이후 이름 모르는 군소 라면업체들의 잇따른 개설로 난립하다가 군소 라면 업체들은 결국 1970년이 되기 전에 모두 퇴장되어야 하는 쓴맛을 보게 하다가 삼양과 롯데(지금은 농심) 이렇게 2개 업체 체제로 압축되었다.


      이때 당시 최고의 인기 라면 상품인 삼양라면과 새칼국수, 롯데공업의 왈순마, 시락면 등을 주력제품으로 내놓은 적이 있었으며 롯데공업은 삼양에 밀려 만년 2위자리를 유지해 오다가 농심라면의 출현으로 경쟁사의 매출이 올라갔으며 경쟁사도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바꿔야 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후 농심의 라면 매출이 급격히 올라가 삼양의 아성을 무너 뜨리고 전환점으로 올라가게 되고 야쿠르트와 청보, 빙그레 등 신생 후발업체들의 라면사업 진출이 러시했지만 청보는 라면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야구단 경영악화와 매출부진에 따른 적자에 허덕여 주력업종인 청바지 사업만 남겨둔채 매각되어 버리게 된다. 청보는 야구를 태평양에, 라면을 오뚜기에 각각 팔려 넘겨 버리는 비운의 시련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후발 라면업체들의 출현은 기쁨과 또하나의 걸작품으로 이어주다가 1989년 삼양라면의 우지파동사건으로 논란을 빚어오자 삼양라면 불매운동과 소비자들의 불만과 항의가 이어지고 당시 서울 도봉동 삼양식품 라면공장도 한때는 폐쇄되기도 한적이 있었다.


      이러다가 1990년 삼립도 라면사업을 개척했었지만 삼립마저도 주저 앉고 결국 삼립의 철퇴로 다시 5社 체제로 좁혀졌다가 1996년 빙그레에서 나온 뉴면과 2년 후인 1998년 자사가 만든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는 매운콩라면을 출시한 경우가 있었고 빙그레는 1990년대 이후 자사의 라면매출이 만년 하위권에 처져 있다가 2003년 3월말 빙그레는 라면사업을 퇴장해야 하고 현재는 삼양, 농심, 오뚜기, 야쿠르트 4개 업체만이 라면사업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라면은 시판 초창기때는 쌀 대체음식을, 후반 무렵은 패스트푸드 또는 간식 못지 않은 분위기로 탈바꿈해지는 최고의 인기 식품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