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의 북학파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는 '사소절'에서 "남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자기 집을 망치고, 여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을 망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의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온 말이기는 하나, 역으로 남성의 집이 흥하기 위해서는 잘 가르쳐진 여성이 며느리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조선후기 사대부 가에서는 여훈서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호서지역 명문가들도 자녀교육이 곧 가문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각종 계녀서·계제자서·부훈·규감·여훈계·가훈·정훈·자경편 등의 이름으로 된 글들이 지속적으로 출간 되었습니다. . 주체는 물론 남성이 우세하나, 여성인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여훈서류들은 여성들의 수신과 돈목(敦睦)을 강조해 여성의 가문내 역할을 크게 강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 역시 양반들의 여식에게만 해당되었고 일반 백성들이나 천민 여성들에게는 아직 교육의 기회는 주어 지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 페미니즘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