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이 주인공보다 매력적인 영화라니, 사실 영화를 보는 재미 중 절반은 매력적인 악역이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주인공은 보통 도덕적이고 올바른 길만 가야 하지만, 빌런은 상식을 파괴하는 자유로움이나 나름의 확고한 철학이 있어서 더 눈길이 가는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다크 나이트의 조커예요.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걸 넘어,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조롱하는 철학적인 면모가 있거든요. 정의를 지키느라 고뇌하는 배트맨보다, 혼돈 그 자체를 즐기는 조커의 카리스마에 관객들이 더 열광했던 기억이 나네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 박사도 빼놓을 수 없죠. 감옥 안에 갇혀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화면 밖까지 전해지는 긴장감이 엄청나요. 잔인한 살인마인데도 너무나 지적이고 우아해서, 주인공인 스탈링 요원보다 한니발의 다음 대사가 더 기다려질 정도였으니까요.
국내 영화 중에서는 신세계의 정청이 생각나요. 분명 잔인한 조폭 두목인데, 주인공 이자성을 향한 끈끈한 의리와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 덕분에 악역인데도 응원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죠. 주인공보다 더 뜨겁고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였던 캐릭터였어요.
마블 영화의 로키도 참 매력적이죠. 처음엔 열등감 덩어리 악당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사연도 많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주인공인 토르보다 팬이 더 많아지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