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때 대마도는 왜 편입하지 못했는지 궁금합니다.
거리상만으로 봤을때 제주도보다 일본의 대마도가 내륙에 훨씬 더 가깝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대마도를 왜 조선시대나 거슬러 삼국시대때 지배를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요.
어떠한 일들이 있었고 지배해지 못했던 원인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마도는 고대로 부터 일본 규슈현에 복속되어 있는 섬입니다.
하지만 일본정부도 통제가 안될 정도로 해적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왜구라고 불렀습니다. 대마도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 쌓여 있고
비옥한 토지가 적어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해적질을 하였다고 하는데
일본 보다는 우리나라와 가까워서 우리나라와의 교역으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삼국시대 때는 삼국이 주도권을 차지 하느라 대마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대마도 왜구의 세력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왜의 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서 복속시키지 않았습니다.
고려 및 조선시대와서는 대마도의 왜구들이 자주 쳐들어 오자(중국의 해안에도 많이 습격하였음) 처음에는 유화책으로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더이상 우리나라의 해안을 습격하지 않을 것을 여러번 경고 하였지만 끊임없이 해안을
약탈하여 결국 조선 세종때는 상왕인 태종의 지시로 이종무 장군의 지휘도 대마도를 공격하여 대마도를 정벌해 버립니다.
하지만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는 복속 시키지는 않았는데 대마도의 지휘부가 조선에 와서 제발 우리를 조선의 지방으로 복속
시켜 달라고 청하기도 하였으나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복속시키면 왜국과의 관계도 어려워지고 왜국 본토에 있는 왜구들의
습격을 방어해야 하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한 것 같습니다. 왜국과도 가까운 섬이었기에 방어는 할 수 있었지만
너무 기회비용이 많이 들었고 인명의 손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후로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임진왜란시
일본의 공격의 교두보가 되었고 그 이후 조선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으로 대마도에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18세기 이후에는
일본국의 국력이 강해져서 조선을 점차 압도하기 시작했고 일본의 근대화로 대마도를 점령 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대마도를 점령 할 수는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방어하기에는 조선이 받는 피해가 너무 커서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중엽부터 '진봉선무역(進奉船貿易) 체제' 하에서 대마도는 고려에 종속되어, 고려는 대마도주(對馬島主)에게 '대마도 구당관'이라는 고려 관직과 '만호'라는 고려의 무관직을 주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대마도는 고려에 속했으나 고려말 여몽 연합군의 대마도 및 일본 정벌과 일본 내부의 사정으로 인한 고려와 대마도의 관계가 단절되고 이후 대마도는 왜구의 소굴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왜구 근절의 목적으로 세종 때에는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하였고 이후 '수직왜인(受職倭人)(조선 정부로부터 관직을 제수 받은 왜인)' 제도 및 고려 시대의 진봉선 무역과 유사한 '세견선 무역' 등의 체제하에서 다시 대마도는 조선에 종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6세기말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하여 조선의 지리 및 실정을 정확히 아는 대마도는 '임진왜란 침략의 전진기지'가 되어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대마도는 '쓰시마'란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고 당파싸움에 정신이 없던 조선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반면에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됨으로써 19세기 후반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대마도는 완전히 일본 정부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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