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에는 대마도를 포함한 동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몽골과 여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느라 바빴고, 해상 무력 또한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겪으며 국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또한, 쇄국 정책으로 인해 해외 진출에 대한 관심이 낮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말로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몇 차례의 대규모 대마도 정벌을 단행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의 한반도는 어떻게든 대마도 문제를 매듭짓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조선 수군은 일본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일본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때까지는 조선군이 해양에서만큼은 일본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예컨대, 우수한 해선과 해전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일본은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인 해군을 양성할 만한 여력이 없었는데 ‘일본군’이란 관념이 형성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등장 이후였다.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왜구가 준동한 이유 중의 하나도 일본 내에 통일적 중앙군대가 없었기 때문 입니다. 그 시기의 일본에서는 육군을 배로 실어 나른다는 관념은 있었어도 배를 타고 해상에서 적과 싸운다는 관념은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조선 전기에는 조선 수군을 압도할 만한 해군력이 부산 동남쪽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일본열도도 그렇고 대마도도 그러한 것에 해당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