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외교와 통상에 대해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는 어떻게 다른 주장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의 외교와 통상에 대해 조선의 전통질서를 지켜려던 위정척사파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개화파는 어떻게 다른 주장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위정척사와 개화파는 조선후기(17-19세기) 외교와 무역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두 대립 세력이었습니다.
'보수파'라고도 불리는 위정척사파는 외국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무역과 외교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주장하는 보수적이고 쇄국적인 관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에 대한 개방이 문화적 오염과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믿었고 한국이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외부 영향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개량파'로 알려진 개화파는 한국이 보다 진보적인 정책을 채택하고 외부 세계에 개방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사회의 개혁뿐만 아니라 외국과의 무역 및 외교 증가를 옹호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와의 사상과 물자의 교환을 국가를 근대화하고 강화하는 방법으로 보았고,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두 파벌은 조선 후기 무역과 외교의 역할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주장은 당시 국가가 직면한 더 광범위한 논쟁과 도전을 반영했습니다. 결국 교역과 외교에 대한 개화파의 견해가 지배하게 되어 한국의 세계개방과 근대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선 개화파는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나뉩니다.
온건개화파는 동도서기론을 펼치며 청과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하였고
급진개화파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받아 서양의 과학과 기술뿐아니라 중국 중심의 사상과제도를 모두바꾸고자하였습니다.
위정척사파는 서양과 일본을 오랑캐로 인식하고 성리학적질서 유교문화등 조선의 전통을 지키고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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