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에 안향과 백이정에 의해 들여온 성리학은 여말선초에 신진 사대부를 양성하였고 성리학의 대부인 목은 이색의 수하에서 공부했던 사대부는 역성혁명파와 절의파로 나뉘여 갈라지게 됩니다. 역성혁명파는 정도전 하륜 등이며 절의파는 포은 정몽주 우현보 등이 있습니다. 고려의 부패와 무능을 실랄하게 비판했던 정도전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성리학적 관점에서 조선을 설계하고 성리학을 건국이념이자 정치원리로 삼은 반면 절면파인 정몽주는 고려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개혁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결국 정도전은 신권보다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고 정몽주도 개국에 반대된다고 판단한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유학자가 바로 정몽주와 정도전 입니다. 둘다 같은 스승인 이색 아래에서 나온 제자이자 유학자 이고 세상을 개혁 하고자 하는 의지는 둘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몽주와 정도전에게도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몽주는 고려를 그대로 두고 고려의 부패된 부분을 고치고 개혁하려고 했지만, 정도전은 고려 왕조 자체를 바꾸려고 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