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락동식 주거지는 위석식 노지에 초석이 놓인 주거지이며
역삼동(흔암리)식 주거지는 토광식 노지에 주혈(주공)이 설치된 주거지입니다.
가락동식의 경우 최초 발견된 것은 서울 가락동이지만 금강유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기 때문에 둔산식 주거지라고도 불리지요.
, 노지의 조성 방식이나 주거지 기둥의 방식이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수혈(竪穴)이란 말 자체가 구덩이, 즉 토광(土壙)이란 뜻입니다.
토
청동기 시대에는 움집에 살았습니다..
주로 강변에 10채정도의 부락이 모여서 생활을 했죠.
청동시 시대 농사는 벼농사는 시행되지 않았고..
조나 수수 등이 재배되었습니다..
토기로는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 덧띠새김무늬토기 붉은 간토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