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광해군은 외교 정책, 서민 정책 등에서 훌륭했으나 명나라를 섬기지 않고(외교적 부분), 폐모살제(인륜적 부분)에 있어서 반정의 명분을 제공함으로써 사실상 불운하게 왕으로 인정 받지 못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대북 정권의 권력 독점으로 인해 서인 세력의 반발을 샀고, 김자점, 이귀 등의 인사들이 능양군(후의 인조) 주변으로 모여 반정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이 정치적 부분이 어떻게 보면 가장 큰 근거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