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각 군영(軍營) 등에 딸린 주장(主將)을 보좌하던 관직.
대개 1인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군영도 있다. 포도청은 좌우 각 3인씩으로 선전관 후보자 중에서 자벽(自辟 : 소속 장관이 자의로 추천함)하며, 1인은 실직(實職)을 맡은 자가 겸임하였다.
병조의 결속색(結束色) 종사관은 국왕이 거둥하였다가 환궁할 때 성문을 여는 단자(單子)를 수납하였다. 또, 훈련도감에는 6인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낭청(郎廳)이라 하였다가 1755년(영조 31)에 종사관으로 개칭하여 1인은 문관시종(文官侍從)으로 군색(軍色) 담당이며, 3인은 음관(蔭官)으로 조총색(鳥銃色)과 화약색(火藥色) 및 호조의 별영랑(別營郎)이며, 2인은 무비사의 낭청 및 협련(挾輦)·파총(把摠) 중에 1인이 통례로 겸하였다.
또, 금위영이나 어영청은 군색·향색(餉色)의 종사관이 각각 1인씩으로 군색은 문관시종, 향색은 무관 실직의 종6품 이상이었다. 그리고 용호영과 같은 경우는 일군색(一軍色)의 낭청이 정례로 겸임하였으며, 양향청(糧餉廳)은 1745년에 낭청을 종사관으로 개칭하는 등 그 규례가 일정하지 않았다.
한편, 외교사절로서 정사와 부사를 수행하는 종사관은 보통 문관 5·6품의 직계로 임시로 홍문관교리의 직함을 받았다. 이때 복식은 당관(唐冠)·패영(貝纓)·금포(錦袍)·흑통견대(黑通絹帶) 및 검은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상례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