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궁금한게 있어서요.
세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문호로 꼽히는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게 그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 하던데요. 혹시 어떤 이유에서 이런 말들이 나오는지 아시는분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나마 확실한 사실 몇 가지만 정리하자면 이렇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6세기 중반 영국 남부의 작은 마을 스트래트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생일은 모르고 1564년 4월 26일에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기록만 있다.
부친은 장갑제조업자였으며 그 지역에서는 제법 유지로 행세한 인물이었다. 아쉽게도 셰익스피어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고,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18세 때인 1582년에 여덟 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해서 1583년에 딸을, 1585년에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았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1585년부터 1592년까지는 셰익스피어의 생애에서 이른바 ‘잃어버린 시절’이다. 일각에서는 이름의 철자 및 의미가 유사한 ‘윌리엄 셰익섀프트’(William Shakeshafte)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그가 이 시기 동안 영국 북부에서 배우로 일했다고도 추정하지만 물론 확증은 없다.
셰익스피어는 1580년대 말쯤에 런던으로 진출해서 극작가 겸 단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594년에는 새로 설립된 ‘시종장관 극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1599년에는 극단 동료들과 함께 신축한 글로브 극장의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1603년에 즉위한 제임스 1세의 후원 하에서 ‘시종장관 극단’은 ‘국왕 극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승승장구했다. 말년에 셰익스피어는 ‘신사’(젠틀맨)로 인정받아 가문의 문장(紋章)을 만들 정도로 저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1616년 4월 23일에 52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탄생일과 사망일이 똑같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여기 덮인 흙을 파헤치지 마시오 / 이 돌을 건드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 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고향에 있는 무덤 묘비에 새겨진 이 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지만 역시 확증은 없다.
셰익스피어의 외모는 잘 알려져 있다. 유명한 [초판 2절판] 작품집에 그의 초상화가 들어있고, 그 원형으로 추정되는 ‘챈도스 초상화’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 묘사된 대머리에 콧수염 기르고 귀고리를 단 남자가 ‘진짜’ 셰익스피어라고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
이것 역시 셰익스피어의 생애를 둘러싼 갖가지 혼란 가운데 하나다. 즉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결코 충분치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위대한 극작가’의 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구구한 의문을 만들어낼 정도로 성가시긴 하다.가령 셰익스피어의 ‘이름’만 해도 그렇다.
오늘날은 Shakespeare로 통일되었지만 한때는 Shagspeare, Shakspere, Shakestaffe, Shaxberd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왜? 당시의 영어는 철자법이 제멋대로라서 where를 wher, whair, wair, wheare, were, whear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셰익스피어의 친필 서명 6개도 철자가 전부 다르며, 그중 Shakspere와 Shakspeare는 있어도 Shakespeare는 없다. 심지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서는 지금까지도 Shakspere라는 철자를 고수할 정도다.
출처 : 인물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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