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문서로 작성할 능력이 없으므로, 억울함을 전달하는 방법은 여전히 막막하였는데, 언문이 보급되자 문자 생활이 가능하게 된 백성들 중에는 직접 서장을
작성하여 상언하는 백성들이 생기게 되었다.
한 예로 어느 가난한 참판의 아내가 가난에
못 이겨 언문으로 상언을 하여 그 처지를
구제받은 이야기가 있고<조선왕조실록 숙종 25년 (1699년) 4월 3일>, 직계 자손이 끊겨 제사를 지내기 어렵게 된 늙은 부인이 제사를 다른 자손에게 옮겨주도록 상언하는 이야기<조선왕조실록 영조 19년(1743년) 2월 5일>, 소박을 맞고 쫓겨 난 여인이 시아버지의
상례에 참여했다가 집안 남자들로부터 크게
모욕을 당하여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억울함을 호소한 이야기<조선왕조실록, 숙종27년(1701년) 4월 25일>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