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떻든 원균은 영남해역에서 단독으로 일본 수군과 맞서 싸우면서 10여 척을 격파하는 등 전과를 올리면서 전라좌수영에 원군을 계속 요청하였지만 이순신은 계속 출동을 미루었고 이것이 후에 원균과의 불화를 조성하게 된 불씨가 되었다. 사실 이순신 장군은 출동하기 2일 전인 5월 2일만해도 확실한 결심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부하들이 적극적으로 출동할 것을 주장했다. 일부 장수들이 영남구원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군관 송희립은 그들의 부당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임진왜란 포함 다른 전쟁에서 작은 공들을 세웠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