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휴가 받았던 섭랑장이란 관직은 어떤 관직인가요?
고려시대 몽골 2차 침입당시 김윤휴가 쏜 화살에 살리타가 사망하면서 몽골군이 물러났습니다
그래서 고려조정에서는 상장군이란 관직을 줘지만
김윤휴가 거절을 해 섭랑장이라는 관직은 하사 받았다고 하던데
섭랑장이라는 관직은 어떤 관직이라 할 수 있나요?
김윤후는 승려라고 알고 있는데 섭랑장은 무과가 아닌 문과의 관직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윤후는 승려 출신으로 백현원에 살았는데, 1232년(고종 19)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처인성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이때 몽골군의 장군 살리타이를 활로 쏘아 죽였습니다. 이 공로로 상장군(정3품)에 임명되었으나 굳이 사양하여 섭랑장(종6품)에 보임되었다고 합니다.
종6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주부·부수찬·기사관·규장각직각·좌찬독·우찬독·인의·교수·겸교수·군문낭청·위수·장사·부전수, 의금부와 오부의 도사, 별제·종사관·부장·수문장·부사과·현감·찰방·감목·병마절제도위 등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섭랑장(燮郞將)은 고려시대의 관직 중 하나입니다. 이 관직은 중앙 관료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섭랑장은 왕의 조칭을 받아 정부의 최고 기관인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업무는 왕의 조칙을 심사하고 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승려의 지위를 버리고 무신의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21년 뒤 1253년 몽골의 5차 침입이 시작되었는데 몽골군은 남진을 계속하여 김윤후가 방호별감으로 있던 충주성에 도달하였고 70일간의 혈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군량이 떨어지고 사기가 저하되자 "힘을 다해 싸운다면 훗날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벼슬을 내릴 것이다!"라고 격려하며 관청에 보관된 노비 문서를 불사르고 몽골군에게서 빼앗은 소와 말 등을 사람들에게 나눠줘 사기를 이끌어 냈다고 합니다. 결국 몽골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충주성 사람들은 관노나 백정부터 일반 백성까지 벼슬을 제수받았으며 김윤후의 공도 인정받아 감문위 상장군(監門衛 上將軍)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