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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2.06

바보온달이 백제의 무왕이란 얘기가 있던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주인공인 온달이 백제의 무왕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바보 온달은 가난한 집에 사는 사람처람 묘사되어 있었는데 아땋게 왕이 될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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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06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온달이 백제의 무왕이라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이자 봉성 온씨의 시조. 그리고 한국에서 바보의 대명사처럼 유명한 인물입니다.
    평원왕의 딸인 평강공주와 결혼하여 왕의 사위가 되었고 전공을 세워 벼슬길에 올랐으며 영양왕 대까지 활약했고, 전래동화로도 유명한 온달 설화의 주인공입니다.

    무왕은 기이한 재주로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사내, 공주의 식견으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사내, 그리하여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이 사내가 백제의 무왕(武王)이다. 설화적인 이 이야기는 백제의 특징과 가능성을 말한다. 재주 있는 자가 왕이 될 수 있다는 백제의 열린 구조를 말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백제 편이 아니었다. 이 와중에 왕 노릇한 무왕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온달과 무왕이 비슷한 생애를 살기는 했으나 동일 인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왕 [武王] -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의 30대 왕 (인물한국사, 고운기, 장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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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 백제 무왕(부여장)과 동일 인물이 아닙니다.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가 온달에게 시집갔고, 이 때 가져온 패물로 온달을 교육시킨 결과 온달이 장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즉, 온달 = 고구려의 장군, 백제 무왕 = 백제의 왕자였으므로 다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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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무왕(武王, 580년 ~ 641년, 재위 : 600년 ~ 641년 음력 3월) 은 백제의

    제30대 국왕이다. 성은 부여(扶餘),

    휘는 장(璋), 아명은 서동(薯童) 혹은

    일기사덕(一耆篩德)이다. 출생지는

    전라도 익산이다. 법왕의 아들이라는

    설과 위덕왕의 서자라는 설이 존재한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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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평원왕과 영양왕 때의 장수이며 평민 출신으로 평원왕의 사위가 되어 577년 북주의 무제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큰 공을 세웠습니다.

    영양왕 때인 590년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였으나 아단성에서 전사한 인물입니다.

    삼국사기 열전 온달조에는 온달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기록되어있는데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때의 사람으로 얼굴은 우습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밝았고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저자거리를 왕래하니 사람들이 그를 보고 바보 온달 이라 불렀고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해 왕은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하니 커서 사대부의 아내가 될수 없겠다,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 하겠다고 놀렸습니다.

    공주가 16세가 되자 왕은 상부의 고씨에게 시집보내려하자 공주는 임금은 식언할수 없다며 궁중을 나와 온달을 찾아 부부가 되었고 공주는 궁중에서 가지고 나온 패물을 팔아 집과 밭을 마련하고 말을 사서 준마로 키웠습니다.

    고구려에서 해마다 3월3일이면 낙랑의 언덕에 왕과 신하, 5부의 병사들이 모여 사냥을 하고 그 날 잡은 산돼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온달도 말을 타고 따라 갔는데, 말을 타고 달리는 품이 남보다 앞서고 잡은 짐승도 많아 왕이 불러 이름을 묻고 놀라 기이하게 여깁니다.

    북주의 무제가 요동을 침략하고 평원왕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나서 이산의 들에서 맞아 싸웠는데 온달은 선봉장으로 북주의 군사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웁니다.

    왕이 기뻐하여 이사람은 나의 사위다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작위를 주어 대형을 삼도록 하라 고 명합니다.

    그 뒤 온달은 왕의 은총을 받으며 위엄과 권세를 누리고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길, 신라가 한강 이북의 땅을 빼앗아 군현을 삼았으니, 백성들이 심히 한탄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적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어리석은 저를 못나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군사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서 반드시 땅을 되찾아오겠습니다. 왕이 허락하자 온달은 떠나면서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온달은 신라 군사들과 아단성 아래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었고, 장사를 지내려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아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 라고 하자 관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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