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은 즉위 초기에는 예송 논쟁을 계기로 서인과 남인을 번갈아 가며 등용하는 환국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이후에는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둘러싼 갈등을 이용하여 서인과 남인의 대립을 조장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숙종은 장희빈에게 휘둘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장희빈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80년 20세의 숙종은 22세의 장희빈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첫번째 왕비인 인경왕후는 젊은 나이로 병사하여 숙종은 장희빈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는 장희빈은 매우 간사하고 악독하다고 장희빈의 성격을 문제 삼습니다. 명성왕후는 서인 장희빈의 집안은 정적인 남인이었습니다. 장희빈은 궁궐에서 쫓겨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두번째 왕비인 인현왕후를 들이게 됩니다. 인현왕후는 서인의 실세인 민유중의 딸입니다. 숙종과 인현왕후와의 사이가 돈독치 못하자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궁궐로 들일 것을 숙종에게 건의하여 5년만에 장희빈은 궁궐로 돌아오게 됩니다. 장희빈은 구에 들어온 후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고 정실부인의 적장자를 세자로 삼아야 한다는 대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세자로 삼고 이에 반대하는 서인의 대표격인 송시열을 궁에서 내쫓고 사사합니다. 숙종의 기사환국입니다. 장희빈을 후궁 최고의 품계인 1품 빈에 봉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