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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3.12.29

조선시대 기미상궁과 제조상궁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던 직책인가요?

조선시대 사극을 보다보면 기미상궁, 제조상궁 등과 같은 상궁이라는 직책들이 많이 보이는데

여기에서 기미상궁과 제조상궁은 어떤 임무를 수행했었나요?

그리고 상궁의 자리에는 양반가문도 갈 수 있었는지,

실질적으로 양반의 자녀가 상궁의 자리에 오른 적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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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조 상궁(提調 尙宮) 또는 "큰방 상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상궁의 직분 상 그는 수 백 궁녀의 수장(首長)이 됩니다. 때에 따라서 그 권세나 권위가 영의정 보다 남부럽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자격은 궁녀 중에 연조가 오래되고 위품이 있고 인격이 높아야 합니다. 학식이 많고 수많은 궁녀를 통솔할 수 있는 영도력이 있어야 하고 인물도 출중하여야 합니다.

    기미상궁은 예전 궁중에는 임금의 독살을 방지하기 위하여 임금에게 수라상을 올리기 전 왕 앞에서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없는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조금씩 음식을 들어서 맛을 보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를 "기미하다"라고 불렀습다. 이 일을 전담으로 하던 상궁을 기미상궁이라고 불렀습니다.

    순조 이후 극히 일부 시기를 제외하면 궁녀는 원칙적으로 천민 출신으로 관노비 중에 선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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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대마다 자세한 규칙은 달라지지만, 궁녀가 노비의 일종이었던 조선 초기를 제외하면

    최소한 양인핏줄이여야 궁녀가 될수 있었고, 양반가문 아니면 상궁 될 때까지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궁녀는 내명부 라는 부서에서 관리 했는데

    노비도 안되고, 병걸린 친척이 있어도 안되고, 어느정도 지식과 외모가 있어야 뽑히기 때문에

    어느정도 사는 양인가문이어야 도전이 가능했고

    감히 처의 자리에 도전 하진 못해도 첩자리는 노리고 싶었던 살짝 딸리는 양반가문들도 자주 도전했습니다.

    (그 유명한 장희빈도 양반가문의 서녀(추정)이죠)

    그리고 어찌저찌 궁녀가 된다음 입궁된지 30년쯤 되면, 상궁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거구요

    또한 평범한 관직과 마찬가지로, 내명부에서도 승진하려면 가문배경이 반쯤 필수적이었습니다.

    최소한 주위에 뿌릴 뇌물정도는 있어야 정치의 한복판에서 3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거죠

    상궁의 종류 제조(담당구역의 대장), 부제조(이름 그대로), 감찰, 지밀(비서), 보모(이름 그대로)등이 있으며

    기미상궁은 왕의 밥상인 수라상의 음식을 미리 맛봐서 독살을 막는 역할로

    제조상궁(또는 큰방상궁)들 중에서 가장 신뢰받는 상궁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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